노란약속
2021.04.24 08:31
1
감옥에서 복역을 마친 전과자가 예전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탄다.
오랜 복역 기간 동안 그는 그의 아내에게 편지로 자신을 잊고 살아가 달라고 부탁한다.
몇 년이 더 흘렀고 그의 가석방이 결정되자 다시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만나길 바란다면 집 근처 큰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매어주고
자신을 다시는 보기 싫다면 아무 것도 메어 놓지 말아 달라는 편지.
달리는 버스에서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승객들은 그의 마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버스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승객들은 외친다.
“모든 나뭇가지마다 노란 리본이 묶여져있어!”
그때서야 전과자는 감고 있었던 눈을 뜬다.
집 근처 길옆의 나무에는 수없이 많은 노란 리본으로 덮여 있었다.
노란 약속이 없다면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스쳐갔을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차에서 내린다.
1973년 이 내용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진 포크 송이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Tony Orlando & Dawn의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가 그것.
https://www.youtube.com/watch?v=FjqBhZj_37U2
이 링크를 누르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2
지난주인 4월 18일 우리는 치노힐스 주립공원을 찾았다.
물고기가 유영하듯 노란 꽃 바다를 가르며 걸었던 림크레스트 트레일Rimcrest Trail.
모두 처음가보는 길이기에 홈피에 올려 진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고 찾았던 곳. 가뭄이 심하다는 보도를 이미 알고 있기에 올 봄꽃 잔치는 하마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 생각이 틀렸다. 상상 이상으로 만개한 노란 꽃바다를 만났다. 끝 간데 없이 이어지는 둥근 구릉은 온통 노란색 와일드 머스터드wild mustard 꽃밭이었다. 남쪽 능선을 따라 걸으며 무릎이 뭐야 어깨까지 출렁이는 꽃 잔치 길.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꽃이 봄바람을 맞아 정말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한 해 살이 머스터드는 열매를 맺는다. 그게 바로 매운 향신료 겨자다. 냉면에 푼 겨자가 매워 코가 뻥 뚫리고 눈물이 찔끔 났던 기억들. LA의 이 따가운 4월 햇살과 목마른 가뭄을 겨자꽃들은 어떻게 이겨 냈을까. 겨자꽃에게 내년은 없다. 한 해 살이 풀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찌되었던 이 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렇게 죽어야 모성애고 본능이며 자연의 이치였다. 그러고 보면 4월 머스터드 노란꽃 바다는 그런 고통의 바다일 수도 있다.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
시인 함민복 <숨쉬기도 미안한 사월>중에서
2014년 4월 16일. 그러니까 우리가 훠이훠이 노란 꽃을 헤치며 걷던 그때로부터, 7년하고도 이틀 전 일이었다. 304명의 생떼 같은 아이들이 죽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뉴스에서는 7주기를 맞은 팽목항의 가득한 노란리본을 보여 주었다. 노란색은 흔히 병아리, 개나리, 봄처럼 '따뜻함'을 연상시킨다. 그럴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도 노란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들.
3
치노 힐스 주립 공원 꽃밭에는 무려 90마일의 트레일이 있다. 우리가 오른 사우스 리지 트레일 끝의 정점 산후안 힐 정상San Juan Hill도 바람이 불었다. 노란 색이 아니면 봄물 오른 오크나무들의 연초록 색깔들의 콜라보 향연. 멀리 태평양도 보였다. 누군가 참 좋다! 참 좋다! 탄성을 지른다. 무시로 부는 봄바람에도 노란색이 묻어 있는 것 같다.

노란색은 생기발랄함과 따뜻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희망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에서 귀환하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거나, 1991년 걸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귀환 장병들을 환영하는 표시로 사용되었다. 그렇게 노란리본은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올 것을 바라는 아내의 희망'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귀환'을 의미한다.
저렇게 눈앞에서 수없는 희망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무 곳에도 없으나, 모든 곳에 있었던 코로나19.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학시대에 입가리개 마스크만이 대안이었던 절박한 마음들. 눈앞에서 시나브로 흔드는 노란 꽃을 보며 이제 마음이 뜨거워진다. 꽃들의 그 손짓이 주는 무언의 가르침.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엄혹한 고통속에도 겨자꽃을 피워낸 것처럼, 사람들의 매운 시간도 끝나간다는 희망.

그러고 보니 산행에 참여했던 열 분 모두가 코로나 2차 접종을 끝냈다. 코비드 족쇄에서 해방되어 봄바람 속에 꽃 산행을 할 수 있어 오늘은 감사한 날. 숨을 쉬면서도 산소의 고마움을 까먹는 것처럼 함께하는 산행이 이렇게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되는 요즈음. 아직 좀 더 기다려야겠으나 생각 같아선 모두들에게 냉면을 한 턱 쏘고 싶다는 충동도 든다. 눈 앞 질펀한 노란꽃 열매로 만든 겨자를 듬뿍 넣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도 그 또한 좋은 일이지 싶다.

겨자를 은근히 고추냉이와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고추냉이는 와사비이고 겨자는 머스타드이다. 겨자는 초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냉면에 들어가는 향료다. 향료를 만드는 부위도 달라서 겨자는 씨로 만들고 고추냉이는 뿌리로 만든다. 언제고 냉면에 겨자를 듬뿍 넣어 먹이는 그런 상상. 하산 길, 잘 가라는 듯 겨자꽃이 일제히 손을 흔든다. 흔들리는 꽃처럼 가벼웠다가 무거웠다가 오락가락한 마음이 다시 따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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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어린모습들을 생각하니 아직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노란꽃들의모습과 주옥같은 글로 다시한번 생각하게되는 시간이었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