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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자매 JMT 도전기 上

2024.07.01 13:08

관리자2 조회 수:185

[정씨 자매 JMT 도전기 上]

눈물 나는 황홀한 풍경을 두고 악천후에 눈물

신영철 산악문학가
  • 입력 2023.09.20 07:45
  •  
  • 수정 2023.10.20 14:50
   
 

[신영철의 산 이야기] 사우스호수에서 비숍 패스 넘어 JMT 진입했으나, 눈에 막혀 탈출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은 존 뮤어 트레일. 눈은 오를수록 깊어지고, 우리 외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은 존 뮤어 트레일. 눈은 오를수록 깊어지고, 우리 외엔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여동생이 한국에서 JMT를 하러 오는데 함께 가실래요?”

태미 김의 전화를 받은 건 6개월 전의 일이다. 허가 받기가 정말 어렵다는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이름을 줄여 JMT라 부른다. 맘모스호수를 들머리로, 요세미티국립공원을 날머리로 하는 구간을 함께 가자는 말. 

눈에 밟혔던 풍경이 떠오르는 순간 무조건 OK. 로스앤젤레스에는 40년을 이어 온 재미한인산악회가 있다. 수많은 산악회들 사이에서도 빡세다고 소문 자자한 정통 모임. 그 산악회에서 유일하게 여성 회장을 역임한 ‘태미 김’의 전화였다. 

그녀는 JMT 전문가로 불러 마땅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예약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KBS나 MBC 등 공중파의 JMT 현지 촬영에 그녀는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트레일 허가와 예약뿐 아니라 거기에 따른 요인 인터뷰와 야영장까지 빈틈없는 기획을 진행한 전문가였다.  

나는 그저 따라 나서기만 하면 될 일.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떠들어도 기후변화는 아직 먼 곳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섰다. JMT를 품은 시에라네바다 산속 눈이 도대체 녹지 않은 것. 사상 최대의 눈이 내렸고 쌓인 것은 미디어를 보고 알고 있었다. 산에 쌓인 적설량을 나타내는 스노 팩Snow Pack이, 평년 대비 239%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사우스호수에서 지도를 보며 존 뮤어 트레일 접근 경로를 살피고 있다.
사우스호수에서 지도를 보며 존 뮤어 트레일 접근 경로를 살피고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사막이 태반이고, 여름 햇볕은 폭력을 넘어 살인적 아닌가. 7월 18일이 JMT 입산허가를 받은 날짜. 그렇다면 7월 폭염에 눈은 무조건 녹게 되어 있다. 나는 몇 번의 종주 경험으로 그걸 안다. 그리고 산행 출발 날짜는 규정상 바꿀 수도 없다. 입산이 점점 가까워오자 걱정이 눈처럼 쌓인 태미 김의 카톡이 잦아졌다. 

그녀가 잡은 산행구간 에그뉴 메도우에서 요세미티 해피 아일까지는 4박 5일, 혹은 5박 6일의 여유 있는 일정. 그곳 풍경이 JMT 북쪽 구간에서 손꼽힐 정도라는 평가에 나도 동의한다. 존 뮤어 트레일은 정확한 계획이 따라야 한다. 네팔처럼 포터(짐꾼)도 로지(숙소)도 없는 야생의 길에서 스스로 먹고 잘 준비를 해야 하니까. 

한국에서 올 동생도 사전 준비와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남의 일이라서 그런지 태미 김의 걱정이 실감나지 않았다. 출발 날짜가 가까워지며 그녀의 잦은 걱정에 슬그머니 겁이 난다. 그때서야 검색을 시작했다. 요세미티 공원 동쪽 입구인 티오가 패스Tioga Pass(3,031m)가 아직 닫혀 있다. 눈 때문이다. 눈이 오는 10월 말부터 해빙되는 다음해 5월까지 닫히는 도로가 7월에도 폐쇄라니. 아차, 싶어 진지하게 폭풍검색에 돌입했다. 산으로 진출한 목숨 건 유튜버도 있는지, 실시간 JMT 산행을 올린 걸 찾았다. 

미나렛 비스타Minaret Vista 전망대에 섰다. 뒤로 보이는 산줄기가 가야 할 존 뮤어 트레일이다.
미나렛 비스타Minaret Vista 전망대에 섰다. 뒤로 보이는 산줄기가 가야 할 존 뮤어 트레일이다.
 

자, 떠나자 이스턴 시에라로

유튜브에서 만난 JMT는 꽁꽁 얼어붙은 겨울 설국이었다. 종주자 장비도 완전 중무장. 12발 아이젠과 피켈로 무장한 전문 산악인들이 등반하듯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평소 7월이면 JMT 종주를 끝 낸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때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눈도 문제지만 사실은 물이 더 큰 걱정이라는 걸 경험치로 안다. 

산정에 쌓인 눈이 녹으며 경보가 울렸다. 도로가 침수되고 홍수로 쓸려 간 집들도 있었다. JMT 산행 중엔 몇 번 계곡 물을 건너야 한다. 동영상에서도 엄청난 계곡 물을 건너기 위해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보인다. 계곡을 건너지 못한다면 시작한 곳으로 속절없이 철수해야 한다. 걸어 온 만큼 걸어 돌아가야 하는 것. 그게 억울하다고 무리해서 건너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그걸 잘 알고 있는 태미 김의 걱정을 이제 충분히 공감한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은, 한국에서 예정대로 비행기가 떴기 때문이다. 포기하기엔 오래도록 기다리며 많은 준비를 해 온 한국의 동생에게는 잔인한 일이 될 터. 일단 부딪쳐 보자는 생각에 종주 배낭으로 무장한 우리는 약속장소에 모였다. 

한국에서 온 동생 이름은 정태심씨. 그런데 언니 이름은 태미 김. 친동생이라더니 성이 다르다. 언니인 태미 김이 남편 성을 따르는 미국식 이름이어서 그랬던 것. 즉석에서 종주대 이름이 결정되었다. ‘정 씨스터 종주대’ 대장은 언니, 대원은 동생, 나는 포터였다. 

한국에서 온 여동생 정태심씨와 태미 김. 태미씨는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랐다. 모기가 많아 그물 모자를 썼다. 뒤편 눈 덮인 산줄기가 존 뮤어 트레일이다.
한국에서 온 여동생 정태심씨와 태미 김. 태미씨는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따랐다. 모기가 많아 그물 모자를 썼다. 뒤편 눈 덮인 산줄기가 존 뮤어 트레일이다.

JMT로 들어간다는 설렘 하나로 의기투합한 우리 팀은 눈에 익은 395번 고속도로를 달렸다. 이 길은 언제 달려도 실증나지 않는 명품 도로. 시에라네바다산맥도 한국의 백두대간처럼 동고서저東高西低를 이룬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산맥. 웅장하고 가파른 동쪽 시에라Eastern Sierra를 끼고 395번 도로는 북상한다. 

슬그머니 고도를 높이며 시에라 고원이 시작되는, 론 파인Lone Pine마을에 도착했다.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봉Mount Whitney(4,421m) 들머리가 바로 이 산간마을. 한국으로 치면 설악동. 일행을 레인저 스테이션으로 안내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시청각 교육이 필요해서였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잘 정비된 사무실에서는 통유리 창문으로 휘트니봉이 바로 보인다. 시에라네바다산맥 대형 모형 앞에 섰다. 거기에 그려진 우리가 가야 할 트레일을 찾아 더듬는다. 산맥의 눈 녹은 물을 400km 이상 떨어진 LA로 배달하는 거대한 송수관 모형도 보였다. 산이 흘려 준 이런 엄청난 물길이라니. 산은 물과 어우러져야 멋있다. 그래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하다고 하지 않는가. 물이 철철 흐르면 여태 봐 온 풍경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 

트레일에서 만난 미국 산악인도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트레일에서 만난 미국 산악인도 자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북한산을 100번 올랐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계절은 물론, 아침이냐 밤이냐에 따라 다르다.  비 오는 날인가, 눈 오는 날 산이냐에 따라 풍경도 바뀐다. 그렇다. 나는 북한산을 다 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몇 번 JMT를 걸었다고, 책을 한 권 써 냈다고 모두 아는 게 아니다. 이번처럼 눈 풍년, 물 풍년 풍경 속 종주는 처음 하는 거니까. 산자수명이 과연 무엇인지 시청각으로 보여 줄 산행에 속으로 은근히 기대가 크다. 

맘모스시市에 도착했다. 입구에 존 뮤어John Muir가 말했던 유명한 글이 반긴다. 

“어서 오너라! 산이 부른다Welcome! The Mountains are calling.” 

한국서 태평양 건너 동생이 날아 온 이유가 그 말 속에 온전히 담겨 있을 터. 맘모스 시가 자랑하는 대형 스키장을 지났다. 미쳤지… 7월 중순이 지났는데 아직도 스키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스키장을 지나 우리의 산행 들머리 에그뉴 메도우Agnew meadows로 달린다. 고개를 넘기 위해 고도를 높이자 눈이 많아졌다. ‘혹시나’는, ‘역시나’보다 틀릴 확률이 높다. 그럴 거라는 생각은 했으나, 고갯마루 검문소가 역시 폐쇄되었다. 실망이 크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이 산길을 막고 있어 우회하고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이 산길을 막고 있어 우회하고 있다.

바로 곁에 솟은 미나렛 비스타Minaret Vista 전망대에 올랐다. 아쉬움에 우리가 가야 할 산길을 눈으로 더듬는다. 첨탑을 뜻하는 미나렛 톱날 같은 침봉들. 원래는 저 아스라한 바위산을 돌고 돌아 호수를 이어가며 걸어야 했다. 하지만 실망은 아직 일렀다. 역시 태미 김은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전문가. 영화 ‘기생충’의 대사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처럼, 그녀에게는 두 번째 방법이 있었다. 이 길을 막았다면, 다른 루트로 JMT로 접근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우리는 차를 돌려 시에라 깊은 산속 포 제프리Four Jeffrey 캠핑장으로 달렸다. 이럴 경우를 예상하고 대장은 캠프장을 예약해 놓은 것. 역시 예약의 여왕 대장이다. 도착한 야영장은 계곡이 곁에 흐르고 식탁과 바비큐 그릴에, 수세식 화장실까지 럭셔리한 곳. 물가 아스펜 숲 속에 텐트를 치고 뚝딱 베이스캠프를 만들었다. 

동생이 한국에서 공수해 온 우리 일정의 주식, 일빵빵 알파미로 저녁을 먹었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하늘엔 북두칠성이 떠올랐다. 물풍년이 맞다는 듯 밤새 계곡물 소리가 시끄러웠다. 

등산화를 벗어 배낭에 묶고 물길을 건너는 자매들.
등산화를 벗어 배낭에 묶고 물길을 건너는 자매들.

소름 돋는 풍경 속을 걷다

아침 일찍 산행을 서둘렀다. 이곳에서 JMT로 연결되는 산행 들머리는 사우스호수South Lake. 이곳에서 비숍패스를 넘어서면 JMT를 만난다. 물풍년을 맞은 산은 온통 초록빛 잔치 중이다. 아스펜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금은 초록과 넘치는 물뿐. 도착한 거대한 사우스호수도 찰랑찰랑 물이 찼다. 주차장도 가득 찼다. 모두 우리처럼 산행에 목마른 사람들이 타고 온 차일 터. 

예쁜 장미에 가시가 있듯, 웅혼하고 아름다운 시에라 산행에는 모기가 있다. 별미 한식인 ‘한국인 피’를 맛보려는 모기가 목숨 걸고 덤빈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모기약 종류만 해도 여럿. 그러나 모기에는 그런 첨단 약품보다 간단한 모기장이 최고다. 여기선 뒤집어쓰는 모기장 모자가 흔하다. 

휘발유가 있어야 차가 가듯 알파미(동결건조 쌀)를 먹어야 산행을 한다.
휘발유가 있어야 차가 가듯 알파미(동결건조 쌀)를 먹어야 산행을 한다.

건너편 바위벽에 걸쳐진 폭포가 굉음을 내며 쏟아진다. 눈풍년이라 볼 수 있는 일회용 폭포들이 장관이다. 톰슨산Thompson (4,115m)과 구드산Goode(3,988m)이 햇빛을 퉁겨내며 빛나고 있다. 이 산맥엔 4,000m를 넘나드는 봉우리만 무려 120개. 우리는 드디어 존 뮤어 광야John Muir Wilderness가 시작된다는 표시판을 만났다. 점점 눈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준비한 아이젠을 꺼낼 정도는 아니었다. 

힘든 오름짓 끝에 소나무 숲길을 지나 갈림길에 섰다. 그쪽 눈밭으로 걸어 간 흔적이 없다. 적막강산. 드디어 숲이 사라지고 시야가 트였다. 보고 싶었던 롱호수Long Lake가 그림처럼 나타났다. 우리는 바위에 앉아 한동안 믿을 수 없는 풍경을 즐겼다. 완벽한 화첩畫帖이다. 

설사면을 오르는 자매 뒤로 수채화처럼 파란 호수가 보인다.
설사면을 오르는 자매 뒤로 수채화처럼 파란 호수가 보인다.

바로 이런 풍경을 기대했는데, 그 이상의 과장된 이발소 그림. 병풍처럼 둘러싼 4,000m급의 산 정상에 쌓인 설선. 그것이 물이 되어 폭포와 격류가 되었다가 끝내 완성시킨 호수. 

코발트색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산과 광활한 시공간. 소름끼치는 풍경이 이럴 거라는 생각에 빠져 침묵했다. 곁의 정태심씨가 그예 한마디 한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미대를 나온 감성인지 몰라도, 눈이 황홀해지는 풍경을 그녀는 그렇게 표현했다. 

종주대에서 서열이 3번이므로 포터는 쿡(요리사)까지 역할을 겸해야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MSR 리액터에 물을 끓여 앞으로 지겹게 먹어야 할 일빵빵 알파미로 간단히 배를 채운다. 우리 앞에 호수와 호수가 연결되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그게 맑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등산화를 벗고 발을 담갔다. 눈 녹은 차가운 물에 뻐근한 통증이 밀려온다. 

눈앞에 히말라야를 연상시키는 광활한 설원이 나타났다. 오가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우리만 그 설원을 횡단한다. 적막한 설원을 몇 개 통과한 후 경사가 급해지는 설벽을 만났다. 태미 김 대장이 등산을 중지시킨다. 3,000m가 조금 넘어 선 이곳 상황이 이 정도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 4,000m 정도 고도를 올린다면 눈이 더 깊어지고 전문등반을 해야 할 상황이라는 판단. 

시에라네바다산맥 모형도.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4,421m)와 실선으로 그려진 존 뮤어 트레일이 보인다.
시에라네바다산맥 모형도.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4,421m)와 실선으로 그려진 존 뮤어 트레일이 보인다.

그 말이 맞다. 여기까지 온 사람 눈 발자국도 없었고, 또 JMT에서 탈출해 여기로 넘어 온 흔적도 없다. 한국에서 JMT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자료 공부를 하며 행복했었다는 정태심씨. 몇 년을 벼르다 건너 온 태평양. 꿈꾸던 그 풍경 속, 또 하나의 풍경이 된 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동생 덕분에 이런 산행을 할 수 있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자꾸 눈물 난다는 동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철수를 시작했다. 그때 대장 태미 김이 말했다. 자신에겐 “또 다른 계획이 있다”고. 힘이 솟는다. 그 다음 계획 속 풍경은 과연 어떤 화첩산행일까. 

2023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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