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5/ 24 루켄스(Mt, Lukens) 산행
2024.09.16 12:03
오늘 루켄스 봉엔 3명이 산행에 나섰다.
트레일 입구에 도착하자, 금방 비라도 올 듯 잔뜩 찌푸린 하늘.
산행 참가 식구가 적어도 해야 할 일은 하는 룰.
“무릎아, 오늘도 즐겁게 우리를 인도해 다오” 스트레칭을 끝내며 만트라를 외운다.
산은 짙은 운무에 덮여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안개 속에서는 방향을 찾기 힘들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갈피를 잡기 어려 울 때도 쓰는 말, 오리무중.




요즈음 산허리를 감싼 낮은 구름처럼, 몇 개월 우울에 쌓여 있었다.
그간 글이나 이론으로 자칫 대범한 해결책이 있다고 주장했으니 말짱 꽝.
오지 말라고 해도, 나 모르게 찾아온 낯선 손님에 받은 구름 닮은 우울.
그런 일 때문에 산행을 한 달 정도 못 했다.
오늘 산에서 고생 좀 할 것 같다.
짙은 안개를 헤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산을 못 올라가더라도 폭우가 내렸으면.
지금 발디봉 가까이에서 엄청나게 타고 있는 산불이 잡혔으면.
원래 히킨스 봉이었는데 그쪽이 산불로 입산 금지라 대타로 찾은 루켄스.
구름 속을 걷는 게 오히려 덥지 않아 좋다.
그렇구나, 세상은 역시 세옹지마.
우리 산악회가 부르는 깃대봉에 도착했다.
역시 깃대봉엔 대형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잠깐 다리 쉼을 하고 여전히 안개구름 속을 걷는 중.






엊그제까지 뜨거웠던 여름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생각 참 간사하고, 또 계절 역시 숨 가쁘게 도망가고 있다.
고도를 올릴수록 계곡마다 구름 몰고 다니는 진경산수화가 펼쳐진다.
문득 노래가 부르고 싶다.
...............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누구나 아는 한계령이라는 노래.
예전에 이 시의 원작자 정덕수라는 시인과 설악산 산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발아래 젖은 계곡에서 구름이, 안개가 능선을 넘나들었다.
원래 정덕수 시인의 원작은 노랫말보다 훨씬 길다.
..........................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사(寒士)라는 호를 쓰는 그와의 설악산행은 서북주능 종주.
시인은 서북주능 산행에서 시 한계령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 종주 영상은 지금 유튜브에도 남아 있다. https://youtu.be/8kg1Prqa8xs?si=QNKpt5o_nbIRvSFx





오리무중 산행이지만 가을 느낌이 이미 산과 마음을 점령해 버렸다.
앞서가는 유회장과 아니샤Anisah가 잘 걷는다.
그들을 따라 뒷쪽에서 걷는 것은 한계령 같은 감상을 즐기기 위함이 아니다.
몇 주 빼먹었으니 당연히 힘들었기 때문.
라디오 송전 안테나가 즐비한 루켄스 정상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만났다.
전체 길이에서 깃대봉이 삼분의 일.
도로를 만나면 삼분의 이.
그러니까 삼분의 일만 더 오르면 정상.
그런데 햇빛이 나기 시작하더니 금방 뜨거워진다.
갑자기 나타난 하늘 참 푸르다, 푸르러.
건너편 산줄기 딸기봉이나 윌슨봉이 섬이 되어 있다.
하얀 구름바다가 산봉우리를 모조리 섬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구름 몰고 다닌다는 한계령이 싹 사라지는 장관이다.
세상을 덮어 버린 운해, 구름바다였으니까.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면 하얀 뭉게구름이 받아 줄 까?
폭신한 구름이니 다치지 않을 거라는, 착했던 시절의 치기 어린 상상.
자주 발걸음을 멈추고, 구름바다와 섬을 찍는다.
숱하게 루켄스를 올랐으나 이렇게 만나는 풍경은 처음.
정상에서 우리는 섬이 된 산과, 구름바다를 즐기며 점심을 먹었다.
사는 게 바람처럼 떠도는 거라면, 몽환 같은 저 구름바다도 곧 사라지겠지.
그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이다.
출발할 때, 낮은 우울처럼 남았던 앙금도 바람 따라가고 있다.




역시 산은, 산속은, 산행은 치유의 힘이 있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구름바다 속으로 풍덩 빠졌다.
하산을 시작한 것.
역시 건각임을 보여주듯 빠르게 걷는다.
정상까지 왕복 10마일에 네 시간 반 정도 걸렸다.
풋힐 길에 있는 서울 바비큐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토종 불고기.
비행기를 공짜로 태워준 아니샤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한턱.
비행기 이야기는 천천히 하겠지만, 구름바다 위를 거닌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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