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만차의 돈키호테,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
2025.03.24 14:52
라만차의 돈키호테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
- 입력 2010.08.01 00:00
글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홍성준(KBS 촬영감독)

직선적이고 다혈질이며 자신의 자랑에 양보가 없는 사람. 알 수 없는 스페인어로 상대가 듣든 말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던 사람.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며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8000미터 고봉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사람.
세계 6번째 히말라야 14개 고봉 완등자.
그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두 바퀴째 돌며 또 10개 고봉을 올라 24개를 기록한 최초의 사람.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스페인의 산악영웅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이었다. 최근 그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만났다.

“노우, 스페인. 나는 바스크, 스페인이 아니고 바스크 사람이라니까!”
바스크라는 지명에 또박또박 방점을 주며 말하는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54세·Juanito Oiarzabal)은 마치 초등교사가 아이들 발음을 교정시켜줄 때의 표정이었다.
후아니토의 그런 교육적(?) 표정을 처음 본 게 아니다. 1994년 발토르 빙하에서였는데 그는 K2를 오르고 난 후 하산 카라반 중이었다. 그때도 후아니토는 바스크를 엄청 강조했다. 그 시절보다 머리가 좀 더 벗겨졌을 뿐 특유의 당당함은 변함이 없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등반을 못한다. 우리 바스크 사람들만 한다. 14개 고봉 완등자는 나를 포함, 두 명 있는데 모두 바스크인이다. 저 앞에 캠프를 친 에두르네 파사반도 바스크 사람이다. 알겠나?”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 북부를 말한다. 예전의 독립왕국이었던 바스크 지역의 정체성은 후아니토의 말처럼 특별하다. 하여 독립군들이 무장투쟁에 나서 현재까지 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만주 벌판을 달리던 우리의 독립군처럼 바스크지역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반군단체인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가 현재도 활동 중이다. 그러나 EU와 미국은 ETA를 테러단체로 분류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바스크를 독립국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스페인은 산이 없다. 그러니 산악인도 없고 히말라야에도 관심이 별로 없다. 그래서 스페인이 아니라 바스크다. 바스크! 스페인 내전 중에 독재자 프랑코(Francisco Paulino)가 강제로 우리를 스페인에 편입시켰다. 우리 바스크 지역은 북동쪽으로 피레네 산맥이 있다. 그곳이 우리 앞마당이라 산악인이 많이 배출되고 또 강하다. 스페인은 모두 약골들 뿐이다.”
후아니토는 다혈질이다. 그가 볼 때는 독립투쟁이지만 스페인 쪽에서 보면 테러가 분명한 바스크 사람들의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 5월 스페인 법원은 2006년 마드리드 국제공항 테러범 3명에게 최종 선고를 내렸는데 각각 징역 1040년. 구형은 1120년 형이었다. 그런데 곁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스페인 의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후아니토의 발언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지,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스페인이 아니라 바스크 사람
1999년 그가 인류사상 6번째로 히말라야 14개 고봉 완등자가 되었을 때, 200만 바스크인들을 포함해 온 스페인이 축제를 벌였다. 스페인 정부로부터 수많은 상도 받고 등산교수직도 얻었다. 후아니토는 바스크라는 지역이 아니라 스페인의 영웅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처럼 튀어 나온 스페인이라 기질이 한국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후아니토의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 면이 우리와 많이 닮았다.
“미스터 럼, 럼홍길. 럼홍길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와는 오랜 친구다. 바스크 빅토리아에 있는 우리 집에도 세 번이나 왔다 갔다. 마칼루, 브로드피크, 로체, 가셔브롬1봉 그리고 안나푸르나까지 다섯 번이나 등반을 함께 했다. 아, 한왕룡도 한번 왔었다. 나 역시 럼으로부터 한국으로 초청을 받았지만 발 수술 때문에 못 갔다.”
후아니토는 엄홍길 대장을 그렇게 불렀다. 아무리 ‘엄’이라고 교정해 줘도 ‘러엄’이라고 발음한다. 그리고 위성전화로 엄 대장을 연결시켜 주니 아주 즐거워한다. 그들만 아는 언어가 있는지 도무지 모를 말로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전화 통화를 하는 후아니토를 보면서 무릎을 탁 쳤다. 영락없이 바스크 판 엄홍길이었다. 땅딸한 몸피도 그렇지만 밀어붙이는 등반 스타일도 그랬다. 더 닮은 것은 긍정적 마인드와 직선적인 성격까지도 똑같았다.
“2004년 K2 등반 중 동상으로 발가락을 잘랐다. 치료가 오래 걸렸다. 첫 번째 올랐을 때는 아무 일 없었는데 두 번째 등반에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바닥이 딱딱한 이중화를 신고 빙벽도 하고 지금처럼 등반도 한다.”
양말을 벗은 그의 발을 보니 이건 발가락을 자른 게 아니라 발등부터 잘랐다. 그것도 양쪽 다. 발이 정상인에 비해 반 토막이었는데 그 발로 과연 8000미터 급 등반이 가능할까?
후아니토의 첫 번째 14개 고봉 완등은 1999년. 바로 이곳 안나푸르나였는데 당시 엄 대장과 故지현옥이 참여했다. 그 등반 성공으로 후아니토는 세계에서 6번째 완등자가 되었고 엄 대장은 4전 5기만에 올랐지만 지현옥씨는 하산 중 실종되었다.
“11년 전 봄이었다. 나는 안나푸르나 정상 등정을 막 마치고 최종 캠프인 4캠프로 내려와 있었다. 그때 정상에 섰다는 지현옥의 무전을 받았는데 하산 중 교신이 끊어졌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아침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다. 그녀는 죽은 것이다. 미스터 럼(엄) 대장이 정상에서 내려오다 올라가는 그녀와 스친 게 마지막이었다.”
故지현옥의 추모비는 안나푸르나 등반로 들머리에 있었다. 매일 후아니토가 그 곁을 지나갔다.
“틀림없이 정상 직하 까다로운 암벽과 빙설벽 구간인 꿀르와르에서 추락했을 것이다. 정상에 이르는 루트엔 100여 미터의 직벽이 서너 개가 있다. 정상인 줄 알고 올라서면 또 나타나고 굉장히 힘든 루트다.”
후아니토는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지현옥의 추락 예상지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다부진체격에 대머리의 그는 힘이 좋아 보이듯 말도 정열적으로 했다.
“안나푸르나를 오르면 이제 8000미터 급 24개봉 등정을 기록한다. 세계 최초의 일이다. 인류 중 나만큼 거봉을 많이 오른 사람은 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콩카구아를 아는가? 난 그 산만 22번 올랐다.”
그에게 유교적 겸양은 없다. 후아니토는 2012년까지 14개 고봉을 두 번째 완등한다는 자신의 계획이 담긴 브로슈어를 보여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렁찬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철철 넘쳤다.
“그 많은 고봉을 모두 무산소로 올랐나?”
“첫 번째 14개 고봉 도전 때인 1993년엔 에베레스트를 산소를 쓰고 올랐다. 그 후 2001년 다
시 무산소로 올랐다. 더 이상 산소를 쓰지 않는다.”
후아니토와 엄홍길 그리고 지현옥
후아니토는 바로 우리 베이스캠프와 잇대어 캠프를 세웠다. 100여 미터 앞쪽에 자국의 에두르
네 파사반 팀이 있었다.
“에두르네의 든든한 후견자였던 것으로 아는데 이제는 베이스캠프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따
로 세웠다. 이유가 뭔가?”
“지난해 가을 칸첸중가 때 에두르네 파사반을 도와 함께 정상에 섰다. 그때는 스페인TV 방송
국의 요구 때문이었는데 그 후로 그녀와 헤어졌다.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속사포처럼 그의 말이 이어졌다,
“에두르네 역시 오은선과 같이 셰르파의 협조를 받아 등반한다.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에두르네는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마치 셰르파의 도움 없이 혼자 오른 것처럼 말하곤 했다. 지금도 셰르파 8명을 쓰고 있다. 뭐가 다른가? 그녀는 저널리스트를 만날 때 말과 행동이 다르다. 산악인은 그래선 안 된다.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으나 바뀌지 않았다. 그게 헤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에두르네에게 불만이 많은 듯 했다.
“마나슬루, 시샤팡마, 칸첸중가 등반을 함께해 봐서 그녀의 능력을 잘 알고 있다. 대원들과 셰르파들이 거의 밀다시피 하며 정상에 올렸다. 거의 초주검 상태에서 산소의 도움으로 겨우 하산했는데도 무산소라고 언론플레이를 한다. 그게 말이 되는가? 참 무서운 여자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그러나 남자가 한을 품으면 베이스캠프도 뜨거워진다. 그는 정말 열이 나는지 에두르네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기자를 만날 때, 그녀는 매번 말이 바뀐다. 당신 같은 한국 저널리스트를 만나면 한국 욕을할 리 없다. 그러나 유럽의 미디어를 만나면 거침없이 한국을 비난한다.”
정확히는 오은선 대장을 욕한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그녀의 오은선에 대한 비난 발언은 많이 전해졌다. 거대 기업이나 셰르파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가미가제식 등반이라고.
“다시 강조하지만 에두르네와 오은선의 등반스타일은 똑같다. 두 명의 레이스에서 다른 점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런 표리부동한 에두르네의 행태를 보면서 몇 번 충고를 했다. 산악인이라면 상대를 인정하고 또 존중해 줘야 스스로 인정받을 수 있다. 남을 깎아내리는 건 쉽지만 꼭 그 결과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 남이 알아주고 치켜 세워주는 게 아닌가? 그런 설명에도 그녀는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별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글로 옮겨도 상관없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사이가 좋았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사이가 벌어졌는지, 같은 바스크 사람이라면서……. 오은선에 대한 악의적 표현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는 말의 사실 여부를 떠나 후아니토는 에두르네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 14개 고봉 경쟁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밝혀 달라.”
“에두르네는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칸첸중가를 오르며 9개봉을 기록한 오은선을 자신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은선이 칸첸중가 하산 후 다울라기리를 내쳐 오르고 카라코람으로 가 낭가파르밧과 가셔브롬1봉을 오르며 전세가 역전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4개봉 등정이라는 눈부신 질주를 거듭하며 12좌로 선두에 서며 에두르네와 오스트리아의 겔린더를 제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두르네가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전만 하더라도 1등을 자신한 독주체제였으니까. 오은선의 등반스타일에 대해선 명분과 결과를 중시하는 동양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의 견해 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말 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서로 존중하면 된다.”
동·서양 등반스타일, 서로 존중해야
후아니토는 어려운 산을 거의 끝냈고, 안나푸르나를 오름으로써 남은 산은 4개봉이다. 현재 24개봉을 등정한 상태. 넘치는 자신감을 자랑할 만큼 굉장한 기록이다.
“대단한 기록인데, 현존하는 등반가 중 유일하다. 돈도 많이 들 텐데 스폰서는 많은가?”
“내가 사는 곳은 바스크 지역에서도 빅토리아라는 시골이다. 그곳에선 스폰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나는 후원자가 있어 좀 나은 편이다. 스페인은 한국처럼 산악인구가 많지 않다. 알려진 얼굴은 불과 열 명 남짓. 후배를 키워야 한다. 그래서 이 팀의 서류상 대장은 내가 아니고 전업 클라이머 카를로스다.”
카를로스 팀은 후아니토를 포함, 6명의 대원과 셰르파 두 명 그리고 닥터가 있었다. 그 중 2명은 이틀 전 눈사태 후 폭풍에 쓸려 부상을 입고 하산했다. 이제 남은 대원은 4명. 인터뷰 도중 스페인으로부터 쉴 새 없이 위성 전화가 걸려왔고 그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었다.
후아니토 일행은 오은선의 정상 등정일인 4월 27일, 함께 4캠프를 출발해 정상으로 향했다. 그와 카를로스, 톨로 칼라파트(39세) 모두 3명이었다. 후아니토의 대원 중 한 명이 3캠프에서 아이젠 끈이 끊어져 하산했기에 3명이 된 것. 후아니토가 그의 24번째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3시 40분.
이미 3시에 정상을 올랐다 하산 중인 오은선과 꿀르와르에서 만나 포옹을 하며 정상 등정을 축하해줬다. 늦게 정상에 선 만큼 하산도 늦어졌는데 그때부터 후아니토의 베이스캠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후아니토와 카를로스가 4캠프로 귀환했다.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다.
그때 이미 안나푸르나 정상부에서는 비극이 시작되고 있었다. 베이스캠프 매니저 역을 자임한 팀 닥터가 우리 캠프로 달려와 구조를 요청한 것이 새벽 1시경. 하산 도중 톨로 칼라파트 대원이 더 이상 못 내려간다고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후아니토는 그를 끌고 내려오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셰르파 한명 붙여 놓고 4캠프로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자신도 탈진한 상황에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후아니토는 4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먼저 내려왔던 오은선 팀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당시 오은선 팀 역시 20시간 이상 등반으로 거의 초주검 상황. 4캠프에서 후아니토 팀이나 오은선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유로콥터를 이용한 구조였다. 유로콥터는 해발 7000미터까지 비행이 가능했으나 스페인 닥터가 부른 헬기는 날씨가 나빠 베이스캠프까지 오지 못하고 돌아갔다. 위에서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잔인한 히말라야였다.
마침 조난자 톨로에게는 위성전화가 있었다.
그는 쉴 새 없이 베이스캠프를 호출하여 “살려 달라”고 했다. 정확한 위치는 셰르파가 조난당했다고 말한 7200미터 지점보다 높은 7580미터였다. 이튿날, 톨로를 지키던 셰르파도 홀로 내려왔다. 후아니토는 다른 셰르파에게 산소와 우모복 그리고 식품을 올려 보냈는데, 밤에 퍼부은 눈 때문에 조난자를 찾지 못하고 속절없이 4캠프로 귀환했다고 한다.
너무 힘이 들어 조난자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자신들이 죽을까봐 내려왔을 거라고 다른 셰르파들은 수근댔다. 살려 달라는 톨로의 연락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 채 29일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40분, 요란한 소음과 함께 빨간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목매어 기다리던 구조 헬기 유로콥터였다. 전날 안나푸르나 계곡을 덮은 구름 때문에 지척까지 왔다 돌아간 바로 그 헬리콥터다.
키가 껑충한 구조대원 리차드(37세), 고공비행 전문 파일럿 다니엘(34세)이 헬기에서 내렸다. 이들은 3일전에도 마나슬루로 비행해 3명의 한국 대원들을 구조했다고 말하며 헬기에서 찍은 디지털카메라 시진을 보여준다. 바로 김홍빈 대장 팀이었다. 이미 그 등반대에서 2명이 죽었다는 걸 보도를 통해 알고 있었다. 온통 까만 김홍빈 대장 얼굴이 보이는데 코에 동상이 심할 거라고 그는 말하며 자신들은 알프스 마터호른이 있는 스위스 체르마트 구조대 소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헬기는 조난자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위치가 너무 높았고 또 눈에 묻힌 탓에 발견 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톨로 대원 때문에 4캠프에서 버티다 위험한 상황을 맞은 후아니토와 카를로스만 구조하기로 했다. 톨로는 후아니토를 그림자처럼 잘 챙기며 따르는 후배이자 제자였다.
후아니토의 생환과 제자의 죽음
다니엘이 조종하는 헬기에 늘어진 밧줄에 매달린 채 하늘로부터 붉은 옷의 후아니토가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지대에 있던 사람이 불과 몇 분 만에 안전한 베이스캠프로 내려 온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옥과 천당을 오간 때였다. 그렇게 높고 무서운 백색의 세계가 히말라야였다. 생중계 하듯 위성전화로 꼬박 이틀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던 툴로였으나 7580미터 고도는 높았다.
결국 후아니토 일행만 구조하는 걸로 흡사 쇼 같은 활동을 끝내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헬기는 사람 사는 곳으로 내려갔다. 후배가 산 채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 보아야했던 후아니토의 참담한 심정을 알 것 같다. 물질문명이 극을 이루는 이 시대에 죽어 가는 사람을 그저 지켜봐야 하는 우리도 같은 마음이었다.
히말라야에서 죽은 사람, 동상으로 코, 손, 발을 자른 산악인들도 숱하게 보아왔지만 눈앞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처음 본 탓이다. 톨로가 젊지만 안았어도 덜 억울했을 것이다.
저녁 시간에 조심스럽게 후아니토를 찾아갔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후아니토는 나를 외면했다. 그리고 때맞춰 걸려온 스페인 국영 라디오 인터뷰에 응했다. “안나푸르나를 함께 오르던 동료 톨로 칼라파트를 구조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는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렇게 모든 상황은 끝났다. 후아니토는 팀 닥터의 조언을 참고하며 방송을 통해 말했겠지만 그의 말이 다시 가슴이 아프다.
인터뷰를 끝낸 후아니토는 내게 가혹한 말을 쏟아냈다.
“산악인 사이에 결속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은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셰르파들은 1인당 6000유로(약 900만원)를 주겠다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당시 오은선은 칼라파트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건 사실과 다른 것이었지만 지금 후아니토의 그런 비난은 그가 겪었던 절박한 상황과 격앙된 심경을 지켜봤기에 이해하기로 했다. 오은선 팀 역시 2차 조난이 우려됐을 때였다는 걸 이해할 여유도, 자신의 책임이 더 엄중한 것도 분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오은선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옹추 셰르파가 30여 분 이상 올라갔다 탈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캠프로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내려와야 함에도 오은선은 그 사고로 4캠프에서 한동안 대기하다가 속절없이 하산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후아니토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히말라야 전문가 홀리 여사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발언이라고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길 위의 돈키호테
카트만두로 왔을 때 호텔에서 후아니토를 다시 만났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외면했던 때와는 달리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며칠 사이 그는 몰라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때 내가 험한 말을 한 게. 내가 한말이 스페인 신문에 났던데 그 점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 두 번째 인터뷰에서 소상히 밝혔고 정정 보도를 했다. 정신이 없었다.”
“이해한다. 오은선 대장도 그 보도를 봤지만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하
더라.”
“내일 바스크로 돌아간다. 발에 동상기가 있고 전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후아니토에게 동상 걸릴 발가락이 있었던가? 이미 모두 잘라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후아니토가 웃었다.
“더 악화되면 이젠 뒤꿈치만 남는다. 그러면 6월 엘부르즈 등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래
서 빨리 치료해야 한다,”
“당신이 진행 중인 28개 고봉 등반도 계속되는가?”
“물론. 안나푸르나를 올랐으니 24개봉을 채웠다. 당신에게 준 계획서에 나온대로 2012년까지
등반을 모두 마칠 것이다.”
미쳤다. 달리 말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문득 후아니토의 안나푸르나 등반을 성공으로 볼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정상에 오른 것은 틀림없으나 등정 성공이란 하산까지 완료해야 한다면 헬기로 구조된 것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그러나 차마 그런 질문은 못 하겠다.
“럼홍길에게 안부 전해 달라. 안나푸르나에서 죽을 뻔했지만 살아남았다고. 후아니토는 불사
신이라고. 하하.”
여전히 엄을 ‘럼’으로 표현하는 후아니토는 예전처럼 당당한 기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과연 살아 그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목숨을 걸었다는 걸 알 뿐이다. 또 만나자는 인사를 끝으로 그가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를 보며 한참 서 있었다.
신의 나라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명작의 주인공 라만차의 돈키호테가 바로 후아니토였다. 현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상주의자의 시련과 좌절을 그린 작품이 돈키호테라면 후아니토가 그렇다. 주위의 의아한 시선과 반복되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않고 돌진하는 인물 돈키호테.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듯 산에 미친 인간 후아니토 역시 히말라야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돈키호테,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이여! 부디 살아남아 뜻을 이루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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