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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독도, 그리운 추억

2025.08.02 12:22

관리자2 조회 수:400

 

Annual Special

사람과 산·울산 MBC 공동기획 <사람, > 독도·울릉도 

신영철이 만난 사람,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정종원 기자

MBC사람, 이 이번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갔다. 특별한 손님이 동참했는데, 미국 LA에서 온 사람, 시청자. 재미한인산악회 소속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유재일씨가 그였다. 일본의 생떼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근래 들어 유난히 시끄러운 곳, 그러한 국제정세와 무관하게 울릉도와 독도는 평화로웠다. 일반인들은 동도 선착장에서 내려 20분쯤 서성이다가 돌아온다지만, 방송사 덕분에 동도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왜 독도가 중요한지 시청각으로 알게 해 준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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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유일의 유인도, 울릉도

선플라워호는 우리를 도동항에 내려 주었다. 자주 와본 섬.

그래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울릉도. 좌우로 우뚝 솟아 기암절벽을 이루는 망향봉과 행남봉에는 눈에 익은 향나무 고목이 그대로였다.

협곡 비슷한 곳에 위치한 도동항. 고개 넘어 저동에는 어업전진기지가 있을 것이고, 섬답지 않게 물이 흔한 곳. 제주 삼다수보다 더 물맛이 좋다는 울릉도. 나리분지 귀틀집은 여전할 테고, 해양성 기후답게 겨울에는 눈이 제일 많이 오는 섬 혹은 산.

 

그렇게 성인봉을 오르고 오징어를 질겅이며 섬 일주 몇 번 했기에 울릉도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동항으로 마중 나온 토박이 산쟁이가 한 방 후려갈겼다. 울릉도산악연맹 최희찬 전무이사였다.

 

울릉도는 동해 유일의 유인도입니다. 그거는 아시죠?”

그 순간 아차, 그렇지 참!’ 하는 생각이 퍼뜩 들긴 했다. 서해와 남쪽 다도해의 무수한 유인도와는 다르게 동해의 유인도는 울릉도뿐이다. 독사 약 올린다고, 최희찬씨는 연타를 날린다. 영상으로는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울릉도의 속살을 보여준다고.

 

아직도 일주도로를 개통시키지 못했어요. 섬 전체가 솟구친 화산체라서 해안이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기에 힘든 공사지요. 대개 사람들이 성인봉만 올랐다가 돌아가지만 울릉도에는 수십 개의 산이 있습니다. 한 달을 뒤져도 다 못 볼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도동을 에워싼 아득한 높이의 절벽들이 새삼 위압스럽다. 최씨가 운영하는 울릉콘도는 명당에 자리 잡았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그의 콘도에 가기 위해 차를 타고 8자 도로를 오른다. 가파른 사면에 만든 다리를 빙빙 돌면서 올라가야 한다. 여장을 풀고 통유리로 된 전망 좋은 식당으로 들어서니 도동항과 질펀한 태평양이 바로 눈 아래 펼쳐진다.

 

이 유리창 정면에서 독도 위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어요. 날씨만 좋다면. 갑자기 독도문제가 이슈화되는 바람에 올 여름철에는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산악인들의 아지트로 장사가 잘 됐다는 말이겠다. 그의 귀여운 딸이 재롱을 부린다.

그러고 보니 십년만에 만나는 셈이네요. 이제는 발가락이 모두 40개가 됐어요.”

 

최씨의 그 말은 총각 때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고, 이제 아들과 딸을 낳았고, 아내까지 합쳐 가족 발가락이 모두 40개가 됐다는 뜻. 울릉도식 유머다.

 

울릉산악회 한광렬, 최종술 선배가 내일 함께 산행을 할 겁니다. 조중호 선배도 아시죠? 지금 저동에서 어택캠프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는데, 형수도 같이 갈 거예요.”

도봉산 입구에 어택캠프라는 숙소와 인공암벽을 만들어 운영했던 조중호씨. 그가 아내의 고향 울릉도로 낙향했다는 소식은 알고 있었다. 연락을 받은 조중호와 아내 이소민씨가 함께 달려왔다. 참 오랜만의 해후였다.

 

특히 이소민씨는 20년을 훌쩍 넘어서 만났다. 울릉도가 고향인 이소민씨를 만난 것은 1985년 히말라야. 대구 에이스산악회 회원이었던 그녀는 가네시히말(Ganesh Himal) 원정을 왔고, 그때 만났었지만 안나푸르나 등반을 왔던 조중호도 만났다. 그것이 인연이 돼 둘은 결혼했고, 딸의 이름을 안나푸르나의 앞 글자를 따 안나라고 지었다. 안나는 지금 프랑스 유학 중이다. 그 정도로 산을 사랑하는 부부. 이소민씨는 지금 울릉도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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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울릉도의 형

최희찬씨 말대로 아침에 식당 유리창 밖으로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영상전문가 말대로 오메가를 그린 망망대해의 장엄한 해돋이. 이런 경험은 사실 흔치 않다.

자세히 보면 해가 뜨고 있는 왼쪽으로 독도가 점처럼 보일 겁니다. 이런 날은 드문데, 복 받았네요. 오늘 아니면 독도에 못 갈 겁니다. 내일부터 날이 안 좋아진대요.”

 

최씨의 말에 우리는 일정을 변경해 독도 탐사부터 나서기로 했다. 독도행 배가 다니는 사동항은 신항으로 개발 중이었다. 독도 탐방객이 많이 모여 있었다. 요금은 47,000. 87.4km를 가는 뱃삯치고 싼 편은 아니다. 쾌속선 씨플라워 선장의 방송이 승객들을 긴장시킨다.

독도를 간다고 상륙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독도땅을 밟을지, 한 바퀴 돌고 그냥 나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 독도에 배를 댈 수 있는 날이 1년 중 50일이 채 되지 않는다는 말.

 

독도 상륙은 누구나 원하는 바이지만 하늘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곧 망망대해 속 한 점으로 녹아들어갔다. 그때 최희찬씨가 한 사람을 소개한다. 한국해양과학연구소 연구원 김윤배 박사였다. 그는 독도-울릉도간 해저케이블 설치작업 타당성 검토 차 이 배에 탄 것.

 

이 바다가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격파시킨 곳입니다. 땅만 영토가 아니지요. 독도가 있어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해양영토를 지킬 수 있는 거죠. 지금 독도 경비의 경우 육상은 경찰청이, 해양은 해군과 해경이 맡고 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수평선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어족 자원과 원유, 무진장 묻혀있다는 메탄하이드레이트(methane hydrate). 물론 그런 자원 때문에 일본이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겠으나 한국은 단호하다. 마침 김 박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기는 거꾸로 입니다만 독도가 제일 먼저 솟았고 그다음이 울릉도, 마지막으로 제주도가 생겼습니다. 먼저 태어나면 형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독도가 제일 큰 형입니다. 두 섬 모두 해저에서 솟아난 해산(海山)이죠.”

 

김 박사의 말대로 동해물을 모두 퍼낸다면 울릉 해저분지에서 솟아 높이가 2,000m가 넘는 산이 바로 독도라는 말.

 

김 박사의 말은 들을수록 유익했고 재밌었다. 독도의 숨은 가치와 역사를 들으며 2시간 반쯤 달리자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장의 배려로 방송 카메라가 선장실에 들어갔다. 눈치가 빨라야 절집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던가? 나 역시 트라이포트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따라 들어갔다.

 

정확하게 자로 잰 듯한 수평선상에 단 한 개의 바위산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에 마침표처럼 솟은 독도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는 맑고 하늘은 쾌청했다. 배가 독도 가까이 다가서니 섬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고, 또 홀로 솟은 작은 암봉도 많았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를 비롯한 33개의 부속 섬과 암초를 포함하고 있다. 동도는 해발 90.7m, 서도는 해발 100.8m. 총면적 0.186이라니까 여의도 광장의 절반 정도인 셈이다.

 

동도 정상에는 태극기가 펄럭였고, 부두에는 전투경찰들이 거수경례 자세로 한 줄로 도열해 있었다. 동해의 끝섬 독도는 그렇게 다가왔다. 승객들은 운 좋게 상륙했다는 것에 기뻐하며 경찰의 거수경례에 감격하는 표정이다. 승객들은 동도를 오를 수 없다. 부두에서 한 20분쯤 있다가 다시 배를 타고 귀환해야 한다. 그래도 좋다는 표정.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가 다음 배를 타고 돌아가기로 허가를 받았기에 2시간쯤 시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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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악회와 독도

상륙한 부두에 땅끝이라는 화강암 푯말이 있다. 땅끝이라. 국토의 끝이라는 말인데 그 이라는 단어가 입속에서 맴돈다. 배 안에서 봤을 때, 그래서 독도가 마침표로 보였는지 모른다. 슬쩍 웃음이 나왔다. 그 곁에 독도 이사부길 1-69’이라는 길 표시도 보인다. 독도에 새로운 주소가 생긴 것. 행정안전부는 새 주소 사업의 일환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로 독도 이사부길독도 안용복길이라는 새 주소를 부여했다.

 

우리가 내린 동도는 독도 이사부길, 서도는 독도 안용복길로 확정했다. 독도경비대 막사는 독도 이사부길 55번지, 독도 등대는 63번지, 서도 어민숙소는 독도 안용복길 3번지가 된다. 이렇듯 독도의 각각의 암초들에게도 번지가 부여돼 있다.

 

MBC가 가져온 장난감 같은 헬리캠(Helicam)이 떠올랐다. 헬리캠이라는 용어는 헬리콥터와 카메라의 줄임말. 여덟 개의 프로펠러를 조종해 전진 회전이 가능한 촬영장비로 보다 낳은 영상을 얻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1,000m까지 상승이 가능하다는 헬리캠은 동도 위를 가볍게 날고, 우리는 가파른 계단을 헉헉대며 올랐다.

대한봉(서도 정상) 가는 길.jpg

 

미리 연락을 받은 근무자가 촬영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곳을 선정해 준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세운 비석이 보였다. 그것보다 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이 1953년 세운 비석은 한국령(韓國領)이라는 글자가 세월의 무상함 속에서도 뚜렷하다.

 

슬며시 그것을 쓰다듬었다. 독도는 산악인들과 인연이 깊은 섬. 1953년 한국산악회에서 학술탐사대를 파견해 제일 먼저 측량한 섬 산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사면을 암벽장비를 사용하며 진행했던 탐사. 그때 박아놓은 목재 기념비는 사진으로만 남았다. 등대를 거쳐 오른 정상부에는 헬리포트가 만들어져 있었다. 경비대에서 키우는 삽살개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든다. 이름은 지킴이’. 조선 토종 삽살개도 독도를 지킨다는 상징적 이름이겠다.

 

정말 이제 앞으로는 가없는 수평선뿐. 경비대와 기념촬영을 끝내고 준비한 사람, 손수건을 건넸다. 귀환길에 부두에서 서도에 살고 있는 유일한 주민 김성도씨도 만날 수 있었다. 도착할 때 그런 것처럼 배가 떠날 때까지 수비대는 경례자세로 배웅했다. 누구든 땅끝에 발을 딛고 독도를 지키는 젊은이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다. 지난 201210월 정부는 동도를 우산봉’, 서도는 대한봉이라고 공식적으로 작명했다.

 

우리는 촬영을 마치고 무사히 울릉도로 귀환했다. 결국 최희찬씨 말이 맞았다. 이튿날부터 날씨가 좋지 않아 울릉도를 떠날 때까지 독도 출항은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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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숨겨진 속살

다음날 아침, 꾸물대는 날씨 속에서 한광렬, 최종술, 이소민씨가 합류해 우리는 도동항으로 내려갔다. 도동항 입구부터 시작되는 뽈뚜리지가 목적. 뽈뚜란 보리수 열매의 일종인데 이곳에 많이 자생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이 산책로는 저동까지 이어진다고 이소민씨가 알려 준다.

 

해식동굴을 거쳐 우리는 산책로 중간쯤에서 가파른 산길을 선택했다. 우거진 원시림을 뚫고 도착한 바위는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쉬웠다. 도동항에서는 이 뽈뚜리지가 분명히 날카롭고 들쑥날쑥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바위에 도착해 보니 해풍으로 만들어진 홀드가 다양해 문제될 것이 없었다. 로프를 쓸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카메라 촬영이 문제였다. 점차 가팔라지는 두 번째 피치를 오를 때,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한 김병주 PD가 스텝과 카메라 몇 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삼형제굴에서 바라본 동도, 촛대바위.jpg

 

이미 정상부에 도착한 우리는 그냥 넘어가는 게 빨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소민씨는 과거의 산력을 증명하듯 동작이 부드러웠다. 해풍에 울퉁불퉁하게 변해 버린 바위가 조각상처럼 예술적이다. 고도를 높이면서 뽈뚜리지에서는 도동과 저동, 죽도와 행남등대가 손에 잡힐 듯 말갛게 드러나 있다. 사방이 터진 리지에서 보니 과연 울릉도는 산 부자다. 그것도 해발 0m에서 시작하는 가파른 산. 리딩을 하던 최희찬씨가 주변 산에 대해 설명한다.

 

저게 성인봉입니다. 그 곁으로 간두산, 나리봉, 형제봉, 미륵산, 송곳봉, 알봉 등 능선마다 산이 이어져 있습니다. 아직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산도 있고요. 육지 사람은 울릉도 하면 성인봉만 알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울릉도가 산 부자라는 걸 알려 줬으면 해요. 사실 두 시간짜리 다큐방송이 울릉도를 찾아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맞다. 이 프로그램은 지방방송 6개사와 수도권의 경인방송(OBS)도 참여해 서울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 방송이 미국에도 송출되니 교민도 찾아온 것.

“1920일 산행을 한다 해도 끝내지 못할 산이 있지만, 문제는 우리 같은 지역 산악인들이나 가능할 만큼 등산길이 비교적 험난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서도 계단에서 바라본 동도.jpg

 

최씨의 말처럼 동해 유일의 유인도 울릉도는 섬 전체가 주름치마를 세워 놓은 것같이 가파르다. 그 주름 골골마다 독립된 능선으로 성인봉을 향해 아득하게 달리고 있다. 화산섬답게 안정되지 않은 푸석바위이기에 아직 전인미답의 계곡도 존재한다는 말. 섬 전체가 극상림을 이루고 있는 덕분에 최상급 물도 풍부하다. 얼마나 물이 흔한지 용출수를 가지고 발전하는 추산수력발전소가 있을 정도다. 울릉도 인근의 해역은 독도와 함께 동해 최대의 황금어장. 저동항은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서의 역할하고 있다.

 

우리는 2시간 정도 걸려 리지를 끝내고 저동으로 이동, 본격적 산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광열씨가 길라잡이로 나섰다. 울릉산악회장을 역임한 그는 뭍으로 나와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한 열혈산꾼.

이제부터 우리가 가는 코스는 동북면 쪽인데 저동초등학교 옆 줄맨등능선으로 올라갑니다. 용바위골에 있는 마지막 집과 임도 따라 삼나무숲을 지나 까끼등, 백운동, 지개골, 윗대 바위로 해서 본천부까지 산행합니다.”

 서도 몽돌해변에서 바라본 동도.jpg

 

등산로였던 옛길

줄맨등이라는 말은 줄을 매어야 올라갈 수 있다는 뜻. 그만큼 가파르기에 쉽지 않다는 등산로다. 울릉산악회가 복원했거나 복원하려는 옛길은 지역 산악인이 아니면 못 찾을 길. 울창한 숲, 풀들이 뒤덮인 등산로를 한씨는 용케도 찾아 이어간다.

 

울릉도 사람들은 바다가 사납거나 급히 이동할 때는 산을 넘어 다녔지요. 육지 사람이 보기에는 제법 가파른 등산로겠으나 우리 울릉도 선조들에게는 분명한 길이었습니다.”

길 없는 길을 찾아가며 한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름치마 골골에도 옛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다는 것. 섬에도 도로가 생기고 이제 그 옛길은 잊혀갔다. 자연의 복원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옛길은 울창한 숲으로 환원됐다. 우리가 가는 길은 동북부와 동남부 지역 주민들이 왕래하던 옛길. 줄곧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간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옛길과 가파른 비탈면 경작지 주변길은 육지의 여느 등산로와 다름없었다. 모노레일이 많이 보였다. 가파른 경작지를 일구는 주민들을 위해 군청이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오붓한 옛길에는 원시적 야성과 정갈함, 오롯함이 있다. 이소민씨가 씩씩하게 걸으며 말했다.

 

이런 숨겨진 매력을 발굴해 울릉도를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게 울릉군의 목표지요. 울릉산악회가 나선 이유도 되고요. 고향이라 그런 게 아니라 전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져요. 남편과 평생 이곳에서 살 작정을 했답니다.”

마음을 비우면 그게 천국이라 했던가? 딸 뒷바라지를 위해 프랑스에서 몇 년간 체류하다 울릉도로 귀향한 이소민씨 말이 그렇게 들린다. 해무가 쌓이고, 우리는 숲에서 한 순간 길을 잃고 두 팀으로 헤어졌다. 뭍의 산처럼 함부로 내려갈 수도 없는 것이 단애의 화산섬 특징이다. 절벽이 많기 때문이다.

 

겨우 합류해 나리분지 들머리이자 뾰족 솟은 송곳봉이 우뚝한 본천부에 도착했다. 적송 숲이 일품인 본천부는 나리분지와 함께 울릉도에서 보기 드믄 편평한 땅이 있는 곳. 송곳봉이 이름대로 하늘을 찌를 듯 석양 속에 우람하다. 송곳봉은 울릉도가 자랑하는 가장 긴 클라이밍 코스가 있는 산. 루트 길이가 430m, 난이도가 최소 5.11급 이상이 된다는 오버행 루트는 본지 임성묵 기자가 처음으로 돌파했다는 바윗길.

서도 계단에서 바라본 동도.jpg

 

성인봉 스키 페스티벌

마지막 날은 빼놓을 수 없는 성인봉 산행. KBS 중계소 코스를 잡고 오르는 등산로에는 일색 고사리가 자랐다. 그 이름처럼 고사리 일색이다. 이소민씨가 숲해설가답게 나무며 식물에 대해 설명한다.

 

양치식물은 울릉도의 특징이에요. 해양성 기후에 습도가 높으니까요.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와 식물이 많답니다. 울릉도는 겨울에 눈이 많아요. 한국에서 가장 많이 내릴 거예요. 겨울 설경과 산악스키를 즐기려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한국산악회에서 이곳의 눈을 이용해 1996년에 제2회 스키대회도 열었어요. 저도 최희찬씨처럼 울릉도 눈을 자랑하고 싶어요.”

 

이소민씨 말처럼 최희찬씨는 울릉도 산악스키 전도사를 자임한다. 한국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하는 성인봉에서 자연설을 이용한 스키는 또 하나의 울릉도 관광자원이라는 말.

 

정상석이 파묻힐 정도의 눈입니다. 성인봉 아래는 무려 6m 정도나 쌓여요. 그곳에서 설동을 파고 잠도 잡니다. 산사태가 난 곳을 슬로프로 이용하는데 40도 이상의 경사가 나와요.”

최씨의 말이었다. 울릉도에 눈이 얼마나 오는지는 그의 일화가 증명한다. 자신의 집인 울릉콘도에서 스키를 타고 읍까지 가곤 한다는 것.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어요. 해 본 사람들 반응은 최곱니다. 뉴질랜드에 살로몬 데몬팀이라는 산악스키팀이 있는데, 연락이 왔어요. 올 겨울 방문할 테니 점프대 만들어 달라는 거지요. 차량이 들어가는 나리분지에 자연설로 점프대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들은 보름이나 체류한대요. 대회를 하려면 복잡하니 산악스키 페스티벌로 진행하는 거지요.”

 

34일 계속되는 제1회 페스티벌은 2008년에 시작했다. 이제 매번 오는 단골도 생겼다. 말잔등 능선에 설동을 파거나 텐트를 치고 야영한 후 다음날 스키를 탄다. 대회가 아니니 누구나 참여해 함께 즐기는 페스티벌이다.

 

동호인들의 잔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리분지는 크로스컨트리에 최고의 장소입니다. 우리집 식당에서 나무로 만든 수제스키 보셨지요? 울릉도는 도로가 없을 때 그렇게 집집마다 스키를 만들어 신었어요. 그 스키는 소주 한 박스와 바꾼 겁니다.”

 

울릉도 벽지를 찾아보면 그런 앤틱 스키가 많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울릉도 옛 사람들은전부 그거 만드는 데는 도사였을 테니까. 설피나 스키 없이는 못 움직이는 사례 한 가지, 울릉기상대에서 직원들에게 출퇴근용으로 스키가 지급됐다는 사실.

 

땀을 한바탕 쏟고 성인봉 정상에 섰다. 어제 우리가 이어갔던 줄맨등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종일 그 고생을 하고도 겨우 울릉도 끝머리 한 자락을 걸은 셈이다. 과연 울릉도는 산 부자 동네였다. 울릉도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는 각성과 함께 새로운 눈뜸이다. 정상석은 내 키보다 크다. 그것이 겨울에는 묻힐 때가 있다니. 과연 적설량이 실감난다.

 

독도·울릉도 지킴이 최희찬

왜 페스티벌을 만들어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요? 스스로 좋아서가 정답이겠지요. 히말라야를 찾아가는 원정훈련도 이곳이 적격입니다. 자연공원법이 없으니 모닥불을 피울 수 있고,전 구간 크로스컨트리도 가능하니까요.”

최희찬씨의 울릉도 눈 사랑은 끝이 없었다. 하산길, 왜 울릉도를 떠나지 않는가 물었다.

 

사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많아요. 그러나 저는 육지에 나가서는 못 살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야 직장 찾아 대처로 나가지만. 한창 때는 4만 명 정도가 거주했던 곳입니다. 오징어가 풍년이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1만 명 될까 말까해요. 다시 4만 명으로 늘려야지, 고향을 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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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없으니 가뜩이나 좋은 공기가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울릉도. 자신이 산악인이기에 사계절 놀 거리를 찾아 심심할 사이가 없다는 최씨. 그가 운영하는 취사 가능한 25평형 콘도는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다. 산 부자 울릉도에 대한 정보는 덤. 관심 있는 사람은 054-791-1020으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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