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제42회 산악축제 성료
2025.10.20 13:19

카풀하는 단골 장소인 라운드피자 주차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반가운 옛 회원들 얼굴도 보여 즐거운 아침.
집행부가 준비한 장비와 제수 음식을 배낭에 나누고 행사장으로 떠났다.
이번 42회 산악축제 장소는 작년에 이어 시더글렌 캠프그라운드.
올해 역시 뻐근한 축제 대신 조용하게 지내기로 기획되었다.
도착한 아이스 하우스 캐년 주차장엔 한미산악회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장비와 음식을 나누어지고 가기 위한 고마운 포터 역할이다.
지난주 산제 장소 답사를 위해 찾았던 하우스 캐년엔 가을이 깊었다.
어라? 다시 온 게 불과 일주일인데 이미 가을은 저만치 떠나고 있다.
며칠 전 LA에는 폭우가 내렸었다.
빗소릴 자장가 삼아 잠들며 산엔 이 비가 눈이 되었을 거라고 상상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가을비 한 번 내릴 때마다 겨울이 성큼 다가선다고.






그 말이 맞다.
우리가 걷는 트레일 건너편 온타리오 픽 능선이 하얗다.
처음 보는 첫눈.
그걸 서설(瑞雪)이라 부르고 그 단어는 '상서로운 눈'이라는 뜻.
그러므로 오늘은 길하고 좋은 일이 일어날 날이 된다.
일년 중 오늘 한 번 만나는 뚜벅이들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날일까.
가을 햇볕도 부드럽다.
여름의 깡패 같았던 폭력이 아니라 가볍고 투명한 햇살.
상큼한 시월의 어느 한 날
그윽하고 고요한 산속에서의 만남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다.
삼거리에서 채프만 트레일을 따라 시더글렌 캠프로 오른다.
저마다 행사에 쓰일 짐을 나누어 맨 뚜벅이 행렬이 보기 좋다.
그들끼리 나누는 인사에 모처럼 트레일이 소란하다.
이쪽 트레일의 특징인 상수리나무 숲엔 가지가 휘도록 도토리 풍년.
하늘은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 풍경이 괴연 이러하다 할 것이다.
산악축제 장소로 점지된 솔 향기 짙은 시더글렌 캠핑장.
이곳은 아무리 보아도 참 명당이다.
쭉쭉빵빵 솟은 소나무 숲이 내주는 그윽한 향기와 그윽한 고요.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 말없이 맞아 주는 너른 풍경.
그윽하고 고요한 시공속에 잠기는 혹은 안기는 특권.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어야 한다는 각성도 든다.




속속 도착한 회원들이 뚝딱뚝딱 플래카드를 거는 등 행사장 코디를 마쳤다.
매해 해 본 솜씨이니까.
여회원들이 제상 차리기에 분주하다.
명절이면 한국에서 만났던 익숙한 풍경.
11시에 시작한 축제에는 대략 50여 명이 참석했다.
오늘 온 분들 중에는 30년이 넘도록 우리 산제에 참석하신 분들도 있다.
팬더믹 이전 만 하더라도 우리 산악축제엔 수 백명이 운집했다.
그때의 그림일기가 이 홈페이지 이 행사방에 갈무리 되어있다.
팬더믹을 거치면서 축소되기 시작한 산제가 오늘에 이르렀다.
축제를 위해 찾는 사람들보다 산의 느낌을 공유하는 뚜벅이가 반가운 법.
오늘 모인 사람들은 오랜 단골이자 그런 느낌을 공유하는 사람들일 터.
과연 상서로운 만남이다.
식전 행사로 여러 덕담을 나누며 ‘상품’을 강조했다.
사람이 상품에 약한 게 아니라, 상품이 사람에 약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참석인원 모두에게 줄 스카프였다.
그냥 줘도 될 것을 상품 운운하며 분위기를 잡은 것.




간단한 국민의례를 마치고 제42회 산제가 시작되었다.
우리 산제는 어떤 특정한 종교를 표방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전통문화행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혹시 모인 사람들 중 종교적 불편함을 줄까 봐서다.
제주가 되는 유경영 회장이 초헌관이 되어 산제가 시작되었다.
회원과 하객의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다.
김종두 회원의 축문 낭독이 시작된다.
연습을 많이 한 모양.
왜? 절절했으니까.
유세차
단기 사천삼백오십팔년 을사년 시월 십구일, 저희 재미한인산악회 회원 일동은, 강호 선배 재현을 모시고, 이곳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의 시다 글랜 캠핑장에서, 이 땅의 모든 산하를 지켜주시는, 지고지존의 신령님께 삼가 고하나이다.
산을 사랑하고, 산행을 통해 지성과 우정을 쌓으며, 천리를 깨우치고자 재미한인산악회가 발족한 지, 이제 마흔두해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무 사고 없이 한결같이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발원하옵기는 내년에도 함께 하시어, 안전 산행을 지켜주옵시기를 앙망하옵니다. 미국의 산 은 물론, 해외의 산을 향한 도전계획을 세우고, 몸과 마음을 닦으며, 정열과 의지를 굳히는 모든 산악인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산악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별하신 보살핌을 주옵소서. 그들의 산행을, 가정을, 사업을, 안전하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이룰 수 있도록 굽어 살피옵소서.
이제 조촐하오나 엄숙한 제례를 통하여, 우리 악우들의 뜻을 모아, 정성을 담은 제수를 올리오니, 부디 강림하시와 흠향하시옵소서.
이천이십오년 시월 십구일, 재미한인산악회 회원 일동.




이 축문 참 오래 써먹었다.
해마다 내용은 똑같았고 날짜와 육십갑자에 따른 을사년 등만 바꾸었으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다듬어 온 원고였다.
해마다 진화한 것이니 축문 내용은 옳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산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알아 달라는 짝사랑.
그리고 자연을 오래 엔조이하게 사고를 방지해 달라는 청탁.
축문 일기를 끝내고 삼배를 한 후 다음 순서로 넘어갈 때였다.
예리한 사회자가 ‘봉투’이야기를 꺼냈고 자칫 잊어 버릴뻔한 헌금이 나왔다.
아헌에 6대 간사를 맡았던 옛 회원 유재일씨가 나섰다.
유튜브 출연자 10명과 함께 왔기 때문이다.
과연 헌금 봉투가 빵빵하다.
종헌은 이정현 선배님이 맡아 주셨다.
김명준 선배님 헌금까지 챙겨 오셨다.
두분 다 회장을 역임하며 키우고 치루어 냈던 산악축제.
산악인들에게 유일한 봉사의 날이 이어지는 걸 대견하게 생각하실 것이다.
한미 산악회 박종석회장과 회원들도 예를 올린다.
한미 산악회도 내년 무탈한 산행이 되기를.






신청 참가자 모두 헌작과 삼배를 올리며 산제가 끝났다.
준비한 제수로 식사를 하며 자연스레 ‘산상 강연’으로 이어졌다.
1부엔 2년 전 발디봉에서 구사일생한 정진택 선배의 생환기.
그 리얼한 증언에 참석자 모두 숨죽여 경청하고 있다.
그 무서운 이야기는 우리 홈 게시판을 찾아보면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2부엔 우리 산악회 윤혜경씨가 나섰다.
실제로 2주전 발디봉에서 있었던 따끈한 조난기.
기억력도 좋지.
지난주 산제 답사차 이곳에 왔다가 들었던 조난기가 너무 리얼해 리바이벌 시킨 것.
청중들 역시 숨죽여 경청한다.
조난당했던 당시 상황과 그런 사고를 방지하려는 대처법에 대한 산상 특강은 대성공.
즉석 산상 강연이 뿌듯해진다.
언제 이런 뚜벅이 입맛에 맞는 특강이 있었던가?




마무리는 이순덕회원의 메조소프라노 독창.
출연진과 미리 ‘짜고’ 한 것도 아닌데 정말 즉석 출연진이 착착 잘 맞아 돌아갔다.
여기저기 막걸리를 기울이며 오랜만에 만나는 산정을 나누었던 볕 좋던 가을날.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 등산화 아래 있다는 소박한 깨달음.
청명한 가을 날씨와 웃음 넘치는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던 제42회 산악축제.
함께 만들어 간 모두를 위한 이타적 산악축제.
이 행사를 위해 함께 나서 준 뚜벅이들의 충정에 감사한다.
이번 산제에 와 주신 모든분들에게도.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 준비를 해 준 집행부 회원들께 고맙다는 박수!!
ps. 원고를 올린 후 강필성씨 사진이 카톡에 올라 와서가 아니라
프로 사진 따로 올리는 게 더 가독률이 높다는 판단.
그리하여 강필성씨 갤러리를 이 방에 따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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