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과 안나푸르나에 대한 추억
2025.12.01 12:35
여성 최초 14개 고봉 완등 오은선 인터뷰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입력 2010.05.01 00:00 안나푸르나에서 신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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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14개 고봉 완등
오은선이냐 파사반이냐?
오은선 대장 안나푸르나 정상으로, 파사반은 시샤팡마로 이동 중

안나푸르나(8091m)는 인간의 발길을 가장 먼저 허락한 8000미터급 봉우리이며 올해로 등정 60주년을 맞았다. 이런 뜻깊은 해에 이곳에 모인 원정대는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개 고봉 완등에 도전하는 한국의 오은선 대장(44세)팀과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세)팀 등 11개국 8개 팀이다.
3월 15일, 베이스캠프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파사반팀. 그 팀은 한 달여간 고소적응을 거친 뒤, 지난 17일 오전 4시(이하 현지시각) 장상에 섰다. 세계 20번째로 14개 고봉에 도전하는 포르투갈의 조아오 가르시아와 함께 9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 30분쯤 정상에 선 것.
베이스캠프 입성한 지 32일 만에 시즌 초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로써 파사반은 13개 고봉 등정에 성공, 오은선 대장과 동률을 이루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자연히 세계 산악계의 관심이 일제히 몰렸다. 여성 최초로 누가 먼저 14개 고봉을 완등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
파사반은 이제 티베트의 시샤팡마만을 남겨두고 있다.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가 완등의 마지막 관문. 오은선 대장은 파사반이 정상 등정에 성공한 17일, 2캠프까지 진출했다.
오 대장은 그곳에서 바로 정상으로 향하지 않았다. 고소적응과 루트 정찰을 마친 19일,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그녀의 계획은 사흘간 휴식을 취한 뒤 22일 등반에 나서 25일, 첫번째 등정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파사반은 19일 베이스캠프로 귀환하자마자 헬기를 이용, 카트만두로 내려갔다. 그녀는 곧 티베트로 이동 14개 고봉 완등의 마지막 봉우리인 시샤팡마를 공략할 예정이다.
파사반은 시샤팡마에서 이미 네 번의 실패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으로 인해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다. 또 강력한 대원과 셀파들의 도움으로 등반 개시 후 2~3일이면 무난히 정상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들의 박빙 경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3캠프를 설치한 오은선 대장이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문제는 히말라야의 급변하는 날씨다.
변수만 없다면 여성 최초 14개 고봉 완등자는 25일을 전후해서 나올 것이다. 그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가능성 큰 가설이다.
한편 지난 4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는 두 여성 산악인이 만났다.
파사반의 초청으로 오은선 대장이 파사반의 캠프를 방문한 것. 180센티미터의 큰 키의 파사반과 155센티미터인 오 대장의 키 차이는 상당했다.
두 사람은 2006년 시샤팡마와 지난해 칸첸중가 등반 때도 만난 적이 있다. 14좌 완등을 놓고 첨예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사이지만 다과를 놓고 나눈 대화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파사반이 먼저 말을 꺼냈다. “미디어의 관심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꼭 성공하길 바란다.” 이에 대해 오 대장은 “고맙다. 당신 역시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르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오은선은 지난해 가을, 파사반은 2006년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사반이 말을 받았다.
“오 대장의 등반 속도는 정말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한 해에 4개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느냐?”
오 대장이 웃으며 말한다.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계획은 했으나 운이 따라 모두 성공했다.”
한참을 앞서가던 파사반을 오 대장이 추월한 건 2009년.
오 대장은 2008년과 2009년 연이어 4개 봉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켰다.
둘 다 대화는 막힘없이 시원시원했다.
오은선 대장이 말했다.
“우리 경쟁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지만 무리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보다 14좌 완등이 더 소중할 수는 없다”고. 그러자 파사반은 “동감이다. 안전에 유의해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는 두 여성 등반가의 경쟁만큼이나 방송단의 취재 열기도 뜨겁다. 한국의 KBS를 비롯 포르투갈의 3TV, 스페인 국영 방송 에스파뇰 TV 등이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
특히 대규모 취재팀을 파견한 KBS 특별 생방송팀은 관심의 촛점. 위성안테나와 엄청난 방송 장비를 본 외국 등반팀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네팔 방송국 인원도 도우미로 참석했는데 자신들 방송국보다 더 첨단이고 큐모가 크다는 말. 방송을 책임진 KBS 이거종 국장은 “방송 역사상 한 획을 긋는 HD(고화질)급 안나푸르나 등정 생중계를 위해 사력을 다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제 오은선 대장이 장상에 오르는 일만 남았다.

안나푸르나 현지 직격 인터뷰 ①
꿈을 이루기 위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겠다 _오은선 대장
신영철(이하 신): 14개 고봉 완등이 눈앞이다. 언제부터 자신감이 생겼는가?
오은선(이하 오): 작년에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산을 오르는 그 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한 개봉, 한 개봉을 오르면서 세계 여성산악인 최초로 8000미터 14개 고봉을 완등해 보자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신: 14개 고봉 완등을 목전에 둔 심정은?
오: 이제 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안나푸르나에 오를 것이다. 마음이 셀렌다. 안나푸르나가 나를 받아줄 것으로 믿는다.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고 싶다.
신: 에두르네 파사반과의 경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 이미 베이스캠프에서 만나 서로의 등반에 최선을 다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자는 이야기도 했다. 안전이 중요하다. 살아남는 것이 진정한 등반이다. 물론 여성 최초 14개 고봉 완등자가 되고 싶다.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이다. 안전한 등반에 집중하겠다.
신: 당신의 등반 스타일은?
오: 무산소 속공등반과 연속등반이다. 히말라야의 8000미터를 순도 높게 오르고 싶은 것이 나의 생각이다. 14개 고봉 완등 레이스 중 산소를 쓴 봉우리는 에베레스트와 K2 단 두 곳뿐이다. 그 외의 봉우리들은 무산소로 올랐다. 처음보다 고소 적응력이 좋아졌고 체력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신: 많은 사람들이 오 대장의 완등을 기원하고 있다. 세계 여성산악인 최초 14개 고봉 완등을 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그리고 어떤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는가?
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고 계시는데, 매우 감사하며 그 기운을 가지고 정상에 서겠다. 이후에는 당분간 쉬고 싶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앞만 보고 너무 빠르게 달려 왔기 때문이다.
안나푸르나 현지 직격 인터뷰 ②
나는 일등이 되고 싶다 _에두르네 파사반
신영철(이하 신): 안나푸르나 등정을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에두르네 파사반(이하 파사반): 등반은 정말 힘들었다. 셰르파와 대원 등 8명이 함께 정상에 선 것은 오후 2시 30분이다. 안나푸르나는 어느 곳 한군데 힘들지 않은 곳이 없다. 베이스캠프로 들어 온 지 32일 만에 겨우 정상에 선 것이다.
신: 안나푸르나에 일찍 들어 온 것은 오은선 대장을 의식한 것은 아닌가?
파사반: 그렇다.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된다. 나는 일등이 되고 싶다. 그러나 그건 최선을 다할 때 주어지는 영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또 우리는 14좌 완등 과정에서 자주 만났다. 나는 시샤팡마가 남았으니 현재 오은선이 절대 유리하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그녀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고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설혹 2등을 하더라도 그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그런 자세는 되어 있다.
신: 시샤팡마 등반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파사반: 우리 원정을 핸들링하는 에이전시를 통해 시샤팡마 입산 허가와 교통편을 마련했다. 헬기가 오면 곧바로 시샤팡마로 옮겨 갈 것이다. 시샤팡마는 내게 4전 5기의 산이다. 지난 네 번을 그 산 등정에 실패했다. 속공으로 오를 것이다. 대략 등반 시간은 2일에서 3일로 본다.
신: 이제 13좌를 올랐다. 그 중 어느 산이 제일 어려웠나?
파사반: K2다. 거기서 발가락 두 개를 잃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시샤팡마다. 다섯번째 도전하고 있으니까.
신: 당신은 13개 고봉을 등반하며 몇 번 산소를 사용했는가?”
파사반: 2001년 에베레스트에서 한 번 산소를 썼다.(그건 잘못된 답변이다. 스페인의 후아니또 오이아르자발은 2009년 칸첸중가 등반에서 파사반이 하산 시 탈진하여 산소가 없었다면 죽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나푸르나 현지 직격 인터뷰 ③
역사의 현장을 생방송 하겠다
KBS 안나푸르나 촬영 총감독 이거종
KBS 이거종 촬영감독(58세)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식당 텐트에서 만났다. 10년 전 칸첸중가 생방송단을 이끌고 히말라야를 찾은 이 감독, 이번에는 안나푸르나 생방송단을 이끌고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다. 20년을 다닌 히말라야, 카메라맨은 카메라와 단둘이 다니는 게 가장 마음 편한 법이다.
지난 4월 4일, 이 감독은 방송단 25명을 이끌고 안나푸르나 북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사람과 기계, 이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베이스캠프까지 올려야 했습니다. 방송장비라는 게 예민해서 조금만 충격을 줘도 방송이 불가능라지요. 기적처럼 오지 중의 오지라는 히말라야 4000미터 베이스캠프에 방송 장비 10톤을 무사히 올렸습니다. 사람도 문제였지요. 대부분 히말라야가 초행인 우리 직원들을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게 베이스캠프로 인도해야 했지요. 그것도 마의 고개라는 뚤루부긴을 넘어서요. 사람, 기계 둘 다 성공적으로 올렸으니 반은 성공했고, 이제 남은 건 완벽한 생방송입니다.”
생방송이 아니라 ‘완벽한 생방송’이라고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11년 전 칸첸중가에서 그는 방송에 성공했지만 등반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원 2명이 숨지고 셰르파 2명이 중상을 입고 후송됐다. 당시 촬영부장이었던 이거종 감독은 끝까지 생방송을 밀어붙였지만 등반과 방송은 모두 해발 7400미터에서 멈춰서야 했다.
“자연이 우리를 외면한 것이지요. 처음엔 그걸 깨닫지 못했어요. 인간은 자연 앞에 겸허히 처절하게 승복해야 하는 존재인데, 어떻게든 정상 등정을 생방송 하고 싶었습니다. 가을에서 초겨울로 가는 때, 방송단이 베이스캠프에 69일간 독하게 머물렀지요. 베이스캠프에 허리까지 눈이 쌓이기 시작하니까 어쩔 수 없이 철수 결정을 했습니다. 철수하는 날, 엄홍길 대장이 산에 대고 큰절을 올리더라고요. 살려 보내주셔서 고맙다고요.”
귀국 후 방송대원이 숨진 데 대해 책임을 지고 회사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이후 가끔 숨이 막히고 심장마비 증세가 나타나 구급차에 실려갔는데, 알고 보니 공황장애였다고 한다. 이거종 감독의 작은 눈에 순간 물기가 가득 맺혔다가 사라졌다.
“저는 무서웠어요. 해발 6300미터 2캠프에서 22일간 있었어요. 정말 무서웠지요. 공포를 안고 사는데, 그 와중에 동료가 죽고, 눈사태 후 폭풍을 맞다 보니 귀국해서 공황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그래도 카메라맨이 안 올라가면 프로그램이 안 나오는데 어찌하겠습니까. 카메라맨은 숙명처럼 위로 오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독한 안나푸르나! 이거종 감독은 거길 다시 생방송단을 이끌고 찾아와 지난 18일 서울 스튜디오와 안나푸르나 방송센터를 연결, 1시간 분량의 첫 생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 남은 건 4월 25일로 예정된 ‘완벽한 생방송’이다.
“제가 하고 싶었지만 못한 게, 히말라야 정상으로 KBS 카메라맨이 KBS 카메라를 들고 오르는 것입니다. 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언젠가 KBS 카메라가 정상에 오르는 꿈을 꿨지요. 이번에 우리 정하영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오은선 대장과 정상까지 동행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 완벽한 생방송입니다. KBS가 지구 최고 오지인 8000미터에서 생방송을 했다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신과 날씨가 도와준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믿습니다.”
안나푸르나 생방송은 카메라맨 이거종에게 현역 마지막 임무다. KBS 카메라맨을 총괄하는 영상제작국장까지 지냈으니 감투는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 이 감독은 이번 출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한다.
“저는 운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히말라야에서 완벽한 생방송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슴 속에 담아 두고 은퇴할 뻔했는데, 이런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정말 감사드리는 게, 저는 은퇴하면 끝이지만 많은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이런 프로젝트를 최종 결정해 준 회사 정책 결정자들입니다. 또 다행스럽게도 오은선 대장이란 ‘훌륭한 아이템’이 은퇴 전에 생긴 것에 대해 오 대장에게도 고맙습니다. 산악인 평생의 꿈이 이뤄지는 곳이 히말라야지요. 14좌를 완등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제 카메라가 돌아간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지요.”
이거종 감독은 대원들을 걱정하지만 정작 본인은 매일 혈압약을 먹고 있다. 한창때는 2캠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촬영했지만, 현재 그의 몸무게는 90킬로그램이다. 90킬로그램 거구를 이끌고 해발 4600미터 뚤루부긴을 넘을 때 취재기자가 고소 증세를 보이며 구토하자, 이 감독은 곧바로 배낭에 있는 카메라를 꺼냈다. 그는 “토하니? 다 토했어? 헛구역질하니?” 여러 차례 물었다. 그렇게 촬영한 화면은 다시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됐다. 헛구역질을 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엄홍길, 한왕용, 오은선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내 눈앞에서 돌아갈 때, 나는 영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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