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18/ 26 빅혼Bighorn Peak 산행
2026.01.19 14:30

신 새벽
카풀 장소로 달리는 도중 여명이 희붐하게 밝아 온다.
부끄러운 듯 시나브로 붉어지는 동녂.
짝사랑 소녀와 눈 마주쳤을 때 얼굴에 번지던 옅은 분홍빛 구름.

매일 거듭되는 해돋이와 석양.
석양을 마주할 때면 매번 장엄한 시를 한 편 읽는 기분이 든다.
세계적으로 소문 난 LA 바닷가 해넘이는 정말 일품이다.
곧이어 다가올 어둠 때문인지 더 처절한 진홍빛 석양.

그러나 일출은 다르다.
산 정상부터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모든 사물 보고 깨어나라 깨어나라.
카풀 장소에 깨어난 회원들이 모였다.
오늘 빅혼 산행에 나선 사람은 4+1명.
이순덕 회원은 미리 출발했다.
아이스하우스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 자동 기도가 나온다.
“주차 자리 하나만 부탁해요”
이규영 회원의 기도.
어머? 기도빨이 먹혔는지 자리가 두개나 비어 있다.
이 기도빨이 고속철도 이전에도 먹혔으면 로또였는디...
이규영회원이 들을 까 봐 속으로 옹아리.
한미산악회 회원들이 보인다.
반가운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빅혼이 목적지.
산행 들머리에는 눈은커녕 꽐꽐 물소리가 점령했다.
그러나 산정엔 눈이 있을 확률이 비디오다.
지난주 루켄스에서 빼어 놓았던 마이크로 크램폰을 챙긴다.
설산에 입장하려면 크렘폰은 무조건 필수.
나중에 그걸 뼈저리게 또 확인할 수 있었다.





한미산악회 회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른다.
요즈음 이 동네 산에는 눈 흉년이 들었다.
폭설이 엄청내렸는데도 여름 날씨 덕에 녹아 버렸다.
그래서인지 계곡물이 한국 장마철처럼 콸콸.
평소 말라 있던 작은 계곡도 철철.
트레일에서 유일한 나무다리가 그 물길에 부서져 흉물이 되어 있다.
과연 물의 파괴력을 알 것 같다.
등산로엔 보고싶은 눈 대신 계곡 물소리가 점령했다.
이렇게 많은 수량은 처음이다.
모두 산정에 쌓인 눈 녹은 물일 것이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오르다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노란 주전자와 막걸리.
파전 안주로 우그러진 주전자에 찌그러진 양재기로 한 잔.
국가를, 세계를, 급기야 우주를 걱정했던 치기.
노란 주전자가 몇 번쯤 비행접시가 되거나 비어버릴 즈음.
꽉 찬 방광을 비우려 줄을 선 변소.
참을 수 없어 밖을 나서면, 가위가 그려진 담벼락이 보였다.
가위를 향하여 거총 발사했던 용감무쌍.
그때 내 귀에 들렸던 콸콸 소리.
그게 지금 계곡에서 재생 중이다.
뻥이라고?
상상은 돈이 안 들고, 스스로를 웃기면 힘이 안 든다.






샘터를 지나고 지그재그 길에서 이순덕회원을 만난다.
50년전 설악여왕으로 뽑혔던 관록이 지금도 진행 중.
유회장과 입산 전에 말을 맞췄다.
적설 상황을 보아가며 빅혼 봉을 직등하자고.
빅혼봉 북쪽 가파른 사면이 새들로 이어지는 눈밭은 원래 히프슬로프.
그런데 새들에도 눈은커녕 먼지만 폴폴.
켈리캠프로 가는 도중 첫 번째 직등코스는 패스.
우리는 두 번째 직등코스를 선택했다.
군데군데 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눈은 크러스트가 되어 있다.
크러스트라는 말은 눈 표면이 얼어 있다는 등산용어.
크렘폰을 신기 귀찮아 눈을 피해 계속 올랐다.
만자니타 잡목 숲을 헤매며 길을 잃었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정상은 놓칠 수 없는 방향이니까.
길 없는 길을 오를수록 눈이 얼었고 경사가 가파르다.
겨우 능선에 섰다.





직등으로 시간 벌어 보려는 판단이 에너지 두 배 소비.
이곳에서 빤히 보이는 발디봉도 눈 가뭄.
이렇게 LA의 겨울은 속절없이 가고 있는가?

능선에 서니 정말 일품 조망이 터지고 있다.
쿠카몽가 윌더니스 한가운데 위치한 MT 빅혼.
당연히 전망이 좋을 수밖에.
일목요연하게 조성된 업랜드 시가지 넘어 태평양 바다.
멀리 섬처럼 떠 있는 산 하신토 봉과 골고니아.
이래서 높이 오르는 자가 멀리 많이 본다는 말이다.
정상에 오르니 한미산악회 박회장과 일행들이 보인다.
그들은 리엑터로 라면을 끓이는 중.
양지쪽에 앉아 그들이 나누어 준 라면을 먹었다.
감사할 일.
배부른 사람에게 일등급 스테이크를 주는 건 틀렸다.
독사 약 올리는 짓이니까.
그러나 뚜벅이들에는 라면이 일등급 등심이다.
길 잃고 헤매다 꺼이꺼이 정상에 오른 허기.





한미산악회는 빅혼 직등 설벽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나친 첫 번째 직등코스로 올랐다고 했다.
크러스트가 된 설사면이 오르기에 매우 위험했었다고.
그 말뜻을 안다.
맞은 편 쿠카몽가 트레일.
크러스트가 된 그곳에서 날아간 회원이 있었고 헬기가 왔었다.
12발짜리 등반용 클램폰이 있다면 직등 루트로 하산 가능.
새들까지 불과 30여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건 그림의 떡.
간단한 결론은 모두 안전한 노멀루트로 캘리캠프를 거쳐 하산.
당연한 일이지만 아침에 마이크로 크램폰을 잘 챙겼다.
그게 없었다면 새들까지 하산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빅혼에 눈이 깊어 매년 그러하듯 히프썰매로 하산할 기회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돌아 돌아 산행이 길어진 것에 불만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서 온몸으로 빅혼과 부딪친 시간이 좋았다.




새들에 내려와 크램폰을 벗었다.
성취감에 휘휘 휘파람을 불며 하산.
산행은 영혼의 비타민.
정말 우리 뚜벅이들 행복은 등산화 밑에 있다.
일주일 일용할 에너지를 만땅 충전한 날.
하산길에도 계곡물은 콸콸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올라갈 때의 생각이 달라졌다.
막걸리 수도꼭지 소리와 비슷했다는 오만한 생각에 반성.
진짜는 콜럼바인 샘물 소리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데 한 표.
한미 산악회 박회장이 라운드피자 뒷풀이 초대를 한다.
조세핀 합동 송년 산행에 보답이라고.
불감청인들 고소원이지만 헤멘다고 산행이 너무 늦었다.

마음만 감사하게 받고 모두 집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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