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8명이 함께 산행에 나섰다.
다음 주 산악축제를 예비하였기에 코스 선정은 다음과 같았다.
시더 글렌 캠프장을 거쳐 아이스하우스 캐년 새들까지.
거기서 점심을 먹고 트레일헤드로 복귀하는 환종주 산행.
이 코스의 진가는 고즈넉함이다.
이 등산로는 샌가브리엘 산맥에서도 숲 경관이 빼어나지만 한적하다.
누적 고도차가 상당하고 너덜지대와 스위치백이 이어져 그럴 것이다.
하이킹 정보에서도 만만치 않은 중상급 코스로 분류하고 있다.






오랜만에 기도를 올린다.
첫 번째 기도, 주차 자리하나 점지해 주옵소서는 꽝~!
두 번째 간절한 기도는 무릎 기도.
방언이 터지듯 애절하게 인도하는 유경영회장의 기도문.
“무릎아 오늘도 우리를 무사하게 안전하게 인도해 다오”
후렴구 끝에 누군가 ‘아멘’을 곁들인다.
이 기도빨은 언제나 약효가 있다.
그 증거로 회원들 안전 산행엔 문제가 없다.
체조를 끝내고 산행을 나서니, 어서 오라고 계곡 물소리가 반긴다.
트레일 옆을 끼고 사계절 내내 부르는 개울의 흥얼거리는 노래.
울창한 나무 그늘을 지나 고즈넉한 숲길을 만나는 멋진 구간이 이곳이다.
10월 이상 기후로 산 아래 동네는 화씨 백도를 오르내리는데 여긴 천국.





가을이 깊어 그렇겠지만, 고도가 높아 더 씨원하다.
한 걸음씩 가을이 깊어지고 숲은 묵직한 침묵과 화려한 빛깔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런 수채화 속에 우리는 기꺼이 정물이 되는 호사를 누리는 중.
삽상한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기분 좋게 훔쳐 가는 산행.
걸음마다 발에 밟히는 낙엽이 바스락 말을 걸어 온다.
시더 글렌 캠프장 갈림길.
지그재그로 굽이치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더 푸르러진 숲을 본다.
지금은 입적한 틱낫한 스님 말이 떠올랐다.
산행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 행위이자, 그 자체가 행선行禪이라는 썰.
뭐, 머리 쥐 나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걸을 때면 오직 걸음에만 집중하라는 것.
세상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끄달린다.
타인의 시선, 성과에 대한 압박, 끝없는 비교와 세속의 욕망.
그러나 오늘처럼 깊은 숲과 산길로 들어서는 순간, 잠시라도 그것을 잊을 수 있다.
바깥의 소음은 잦아들고 웅장한 자연의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워 주니께.
개인의 삶이 인생이라는 배낭을 메고 끝을 향하여 걷는 산행이라 비유한다면?
내가 짊어진 삶의 배낭 속에 불필요하게 자리한 무거운 욕심은 무엇인가.
틱낫한 스님이 말했다.






우리가 걷는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푸른 대지 위를 온전히 깨어 걷는 것일 뿐.
산행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단순한 외적 이동이 아니라는 썰.
행선, 걷기를 잘하면 겹겹이 쌓인 마음의 번뇌와 위선을 벗겨낸다.
그래서 가장 본원적인 나의 맨얼굴을 만나는 내적 순례의 여정이 산행이라는 썰.
뭐 그 정도까지 마음공부가 된 우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좋은 건, 좋은 거라는 정도는 안다.
시더 캠프장은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고 있다.
산악축제 행사를 치룰 장소에서 다리쉼을 하며 몇 가지 업무 분장을 했다.
볕 좋은 가을 한복판에서 맞는 제43회 산악축제.
수 백명이 모여 풍악을 울리고 뻐근했던 행사를 많이도 치렀다.
팬데믹 이후에는 끼리끼리만 모여 보내는 조촐한 축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43회를 이어 온 유일한 산악인들의 축제가, 다음 주다.
그게 걱정이 되어 뉴저지에서 온 건 아닐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고교 동문인 윤형석회원이 ‘백자선서’리더를 한다.
나 역시 마음고생하고 있을 집행부 격려하러 온 것도 맞다.






우리는 산행을 이어갔다.
‘삽상한’이라는 단어가 이 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
그런 바람 속에 그런 삽상한 풍경 속에 훠이훠이 걸었다.
산길 위의 매 걸음은 발로 대지를 어루만지는 느낌.
정직한 발걸음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린다.
투명하고도 푸르른 하늘.
가을이라 더 깊어진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깊이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는 그 어떤 보약보다 달콤한 법.
물들어 가는 산 아래 단풍을 본다.
한철, 치열하지만 조용히 열매를 키웠던 나뭇잎들.
이제 갈 때를 알고 이쁜 황금색으로 물들고 있다.
꽃은 시들면 버리지만 예쁜 단풍은 책갈피에 보관한다.
할 일 다하고 곱게 늙어 가는 색깔이 단풍이 아닐까, 라는 생각.
반환점 아이스하우스 새들에 도착했다.
여기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능선과 우뚝한 고산들.
무수히 몰랐던 그 산들을 가르마 타주는 핵심 길목 새들.
여기서도 베스트셀러지만 아무도 잘 모르는 헬리콥터 이야기가 무성했다.
키 큰 회원이 오늘 하산주 쏜다고 하니, 이정호 회원이 먼저 총을 뽑았다.





점심 후 올라왔던 트레일헤드로의 하산길.
돌길과 너덜지대를 조심스레 내려오며 만난 컬럼바인 샘물.
여름이면 달고 시원하고 겨울이면 김이 나는 샘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하산을 거의 마쳐 갈 즈음 모두 탁족(濯足)을 거행하기로 했다.
거창한 게 아니다, 탁족은 말 그대로 ‘발을 씻는다’는 먹물 든 표현.
옛 선비들이 깊은 산골 맑고 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쫓는 행위.
그 차가움으로 세속의 번뇌와 피로를 씻어내던 풍류이자 휴식의 방식이었다.
종일 배낭과 체중을 오롯이 짊어지고 거친 산행을 버텨낸 등산화.
그것에서 해방되어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계곡물의 차가움.
이게 산행의 달콤 시원한 보상이라 할 것이다.
시원함을 넘어 진저리쳐지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
"10분을 견디면 천 불을 주겠다"는 유쾌한 내기 시작.
발을 담근 도전자가 버텨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
곁에서 초를 세며 "천 불 날아가겠다", "얼른 빼라 동상 걸린다"며 배를 잡는 동료들.
탁족을 마친 발바닥에서 찌릿찌릿 피가 도는 걸 확실히 느낀다.
마치 발끝에서 새 느낌이 솟아나는 듯, 찾아 온 짜릿한 각성과 개운함.
거창한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부럽지 않은 맑은 계곡의 탁족이다.
작은 장난과 시원한 물에 천하를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게 산이 건네는 소박하고도 깊은 위로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산길을 내려오며 주변에게 물었다.
“미국과 한국 대통령들 불쌍하지요? 걱정 끊임없고 욕은 바가지로 먹고.”
세계를 상대로 큰소리치고, 그걸 방어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대통령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등산화 아래에 있다는 걸 믿슙니까?”
“믿슙니다~!”
흐흐, 새들에서 점심으로 찐 계란 하나와 빵을 까먹었던 회원들.
그 가난한 점심을 먹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우습게 안다.
그런데 그 말이, 그 생각이 맞다는 생각.
내 등산화 밑창이 닿는 정직한 대지를 즐기는 산 속의 자유인들.
백악관이나 청와대에 이런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 있는가?
아무나 와서 즐기라는 자유가 있는가?
울도 담도 없는 자연을 소유한 진정한 부자.
등산화 밑에 존재하는 행복.
그걸 누리에 펼치고 공감하는 행사가 바로 산악축제이다.
그러므로 산을 좋아한다면 주변 모두 모여 가을을 즐겨야 한다.
아까 탁족 내기로 천 불을 잃을 뻔했다.
그러다 살아난 게 고마워 대통령 욕하며 신났던 상상은 끝났다.
8명이 보폭을 맞춰 산행을 마친 성취감.
그건 상상이 아니었다.
라운드 피자의 푸짐한 한 상차림은 현실이다.




그걸 쏜 이정호 회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