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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 바이칼로 가는 멀고 먼 길

2008.08.31 20:07

마로니에 조회 수:927

2.. 바이칼로 가는 멀고 먼 길


비행기에서 내리니 비로소 입국카드를 나누어 준다.
어지럽게 쓰여 있는 러시아어를 보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니 나도 따라 내렸지만
러시아를 모르는 나에겐 계속된 숙제로 그 카드는 남아있다.
젊고 발랄한 금발의 아가씨가 가장 내 도우미로 적합해 보여 다가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꾀나 영어를 잘하는 대학생이다.
어렵지 않게 도움을 받아 카드를 작성하고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니
진짜 출입국창구에선 알아듣지 못할 말을 계속하며 나가라는 시늉이다.
다시 뒤로 가서 뭔가를 가져오라는 것 같은데, 알아듣지를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는 답답한 듯 창구에서 나와 뒤에 서있는 노인을 손짓하여 부른다.
그러자 그 노인은 세관신고서를 하나 가져다준다.
아까 도와주었던 금발의 여대생은 이미 통과하여 사라진 뒤고 나에겐 도움을 줄 사람도 없다.
다행히 뒤편엔 영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고 그 안내판을 보고서야 겨우 작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맨 마지막에 통과하고 짐을 찾아 나가니
스산한 시베리아의 중심지 이르크츠크의 매력은 반쯤은
 날아간 뒤였다.
배낭을 맨 초로의 남자가 손을 흔든다.
서울에서 이미 연락한 산악과 outdoor 전문 여행사의 사장 유리였다.


그는 만나자마자 작은 카페로 끌고 가서
지도를 펼치고 앞으로 있을 트레킹에 대해 한참을 설명한다.
한참을 듣다보니 유리 옆에는 건장한 남자가 버티고 서 있는데 ‘안드레이’라고 한다.
바로 나의 등산가이드다.
그런데 앉지 않고 서있는 그를 보자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원소와 그의 양아들 여포같은 분위기다.
마침 한국을 떠나며 책방에서 구입한 ‘삼국지 비어록’이란 책을 몽골을 경유하며 이르크츠크에 오기까지
벌써 다 읽고 다시 읽고 있으니 환영에서 오락가락 하는 듯하다.


잠시지만 유리의 장황한 설명이 끝나고
안드레이가 운전하는 구 소련시대의 명물 ‘라다’ 라는 차에 올랐다.
안드레이의 자가용인데 사각형의 멋없는 구형으로 승차감은 무시하고 견고하기만 한 차다.
안드레이와 함께 2시간을 달려 바이칼 호수변의 마을 리스트비얀카에 닿는다.

5월 중순의 바이칼은 바르구진(bargizin-바이칼 북부지역 지역으로
이르크츠크에서 3일정도 차로 가야 닿는 먼 곳이다.
윈드 라고 불리우는 바람이 한겨울 같이 날카롭다.
한낮은 태양에 대충 달구어져서인지 봄날 같은 따사로움이 있지만
해질녘의 바이칼은 옷깃을 여미는 찬바람이 지배한다.
위성으로 확인한 오늘의 바이칼은 70%이상이 얼어있다.

눈앞의 출렁이는 물결 넘어 하얗게만 보이는 바이칼 반대편은
눈 산과 얼음 호수로 너무 멀어 설선이 어렴풋하다.
반대편 능선이 바로 하마르다반 산군이란다.

난 서울을 떠나면서 볼세이깍띄 트레킹과 하마르다반 등반을 계획하고 큰 배낭을 촘촘히 싸왔다.
겨울 등산화에 오리털 침낭, 오리털 파카, 스패츠,
동계용 미튼(덧장갑), 윈드쟈켓에 윈스 스토파 상하, 배낭은 터질 듯 했다.
짐을 리스트비얀카의 숙소인 뚜르바잘(통나무집)에 풀어 놓고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는 바이칼을 한 잔 보드카에 담아본다.
내가 묵은 뚜루바잘(통나무 집)은 리스트비얀카에서 제일 큰 뚜르바잘로
아침나절에 만난 유리라는 여행사 사장이 지은 집이다.
특별한 손님이라고 맨 위층을 준다.
내가 묵은 맨 위층은 방이 두개밖에 없어 팬트하우스라고 스스로들 부른다.


이 방에서는 바이칼호수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베란다에서 바이칼의 석양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술을 외로움의 친구라고 했던가? 술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했던가?

술은 사람을 악마와 같이 거칠게도 만들고 천사와 같이 웃음으로 만개한 얼굴을 갖게하기도 한다.
다 잊게 하는 술의 마력은 술을 마시는 자체를 희화하고
술 속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놓았는지 잊게 하니
그것이 무엇인지 다시 알아보기 위해 술은 다시 마셔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다.
혼자라는 상황은 더욱 그런가??
우아하게 품위를 유지하려고 말을 아껴 옅은 미소를 남기며 방으로 들어간다.
서빙하는 아가씨들을 분명 의식한 행동이다.
무엇을 그들에게 남기고 싶어 그랬을까, 외로움과 관심을 감추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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