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유게시판

3. 바이칼 호수에서의 트레킹

2008.09.01 18:10

마로니에 조회 수:1122

3. 바이칼 트레킹(바이칼 호수를 따라 볼세이깍띄까지)


 투르바잘(통나무집)에서의 첫날밤은 바이칼에 어울리는 밤이다.
둥근 원목을 그대로 쌓아 만든 통나무집 투르바잘은 바이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첫날밤의 맺음이다.

러시아 여행에 공통된 불만이라면 너무 비싸다는 것과 먹을 게 없다는 것이다.
긴 트레킹이 부담되어 아침에 대한 집착이 있었지만
러시아식 붉은 스프에 빵 몇 조각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했다.
그 정도면 되었기에 간식을 몇 개 챙겨 넣고 호텔 앞길로부터 시작되는 트레킹을 시작했다.

처음 출발하면 계곡을 따라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30분쯤 오르자
가이드인 안드레이가 스프레이를 꺼내들고 팔을 벌려 예수가 되라고 한다.
영문을 몰라 팔을 벌리자 스프레이를 옷 위에 구석구석 뿌린다.
스프레이 표면에 그려진 ticks(찐드기)를 보여준 후에야 왜 우리가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바이칼의 진드기는 나중에 몸을 뭍었을 때 확인한 것이지만 큰 놈은 작은 파리만큼 크다.


작은 것도 장미 꽃봉오리에 붙은 작은 연녹색의 찐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놈이다.
훨씬 크고 색깔도 검정색이고 아주 단단한 등짝을 갖고 있어 찐드기에 대한 생각을 확 바꾸어 놓는다.
길면 한 시간 짧으면 30분마다 안드레이는 나보고 뒤로 돌라며 혹 붙어있을지 모를 진드기를 찾아 떼어주곤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봄이 되는 5월에 가장 활동적이며
더운 여름에는 진드기들도 활동력을 잃어 몸에 달라붙는 일이 없으므로 별 걱정을 안 한다고 한다.
수풀을 헤치고 갈 때면 어김없이 몇 마리의 찐드기가 붙어있어
우린 트레킹 내내 신경을 곤두세우며 서로 떼어주곤 했다.
이 찐드기가 물면 부풀어 오르고 가렵다고 한다.
따라서 더운 여름이라도 장잡과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만 한다.
이게 바이칼 트레킹의 유니폼이다.


처음 계곡을 따라 걷던 등산로는 2시간쯤 오르자 능선에 닿는다.
이곳이 볼셰이깍띄 트레킹에서 가장 높은 능선상의 봉우리다.
그리 높지 않은 907m, 북한산 정상정도 되는 높이다.
정상에 올라도,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에도 자작나무 풀에 가려 시원한 전망은 기대할 수 없었다.
촘촘한 나뭇가지 사이로 겨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반대편으로는 하마르다반 산맥이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아직 얼어있는 바이칼의 설선이 더욱 뚜렷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30분가량 가니 왼편으로
길이 시작된다.
이 내리막길은 능선을 돌아 바이칼호수로 이어진다.
다시 1시간가량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보니 시야가 활짝 열리는 바이칼 호숫가에 닿는다.
호수의 가장자리는 아직도 두터운 어름이 남아있다.
이제 녹기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바이칼은 이르크츠크보다 기온이 5도는 낮다.
아마도 부르구진의 바람도 그렇지만 천천히 녹는 바이칼의 얼음 때문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의 추위는 마치 냉장고에 비유한다.
바람도 얼어버린 시원함은 -50도 가까이 내려가도 크게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
시원한 기분에 너무 상쾌하다.
마치 깔끔한 상대의 써비스를 받고 기분 좋게 팁을 막 꺼내는 여행자의 기분이다.
그러나 서서히 얼어가는 추위는 뼈까지 와 닿는다.

그럴 때면 러시아식 사우나가 반겨준다.
온도를 180도까지 올리면 귀와, 손, 발등 발초부위가 너무 뜨거워
오래 사우나실에 있을 수 없으므로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신을 신고 사우나로 들어간다.
너무 뜨거워 못 견딜 때쯤이면 담아온 한바가지 찬물을 슬슬 몸 이곳저곳에 발라가며 심장 가득 열기를 담는다.
참다못해 밖으로 나오면 나의 몸은 이미 불덩어리다.
영하 40도에서도 추위를 못 느끼는 나의 몸은 신비스럽다.

두터운 얼음을 깨어 만들어 놓은 사각형의 얼음 웅덩이에 그대로 머리까지 푹 담근다.
심장마비로 얼어붙어야할 내 심장은 얼음속에서도 잘만 작동된다.
그렇게 머리까지 넣기를 세 번이나 하면 머리카락은 뻣뻣한 얼음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붉게 달아오른 내 몸에는 흰 색의 반점이 이곳저곳 생기면서 가장 먹기 좋은 꽃 등심을 바라볼 때의 감칠맛 같다.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몸이 식기 전에 옷을 입지만 외투는 좀더 기다려야한다.
보드카를 한잔 두잔 연거푸 마시고 허연 비개가 박힌 소세지를 한점 먹고
한 점 더 집어 들고 숙소로 발길을 돌리는 러시아 바냐(사우나),

갑자기 오늘 산행이 끝나면 바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릴 온통 지배한다.
안드레이가 오늘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으면 모를까?
자기가 준비하겠다는 데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며 간식을 먹고 다시 바이칼 호수를 따라 작은 능선을 넘는다.
바로 그곳이 점심 먹는 포인드인 “또스띠‘ 다.
이곳이 트레킹의 중간지점이며 여기까지의 소요시간 은 4시간, 7km 거리다.
출발 전부터 하루산행인데 안드레이가 큰 배낭을 맨 것도 의아했고
그 배낭을 들어봤을 때 몹시 무거운 것에도 놀랐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점심때였다.
먼저 테이블보를 펴고 식기와 접시를 펼쳐놓는다.
그리고는 여러 야채를 꺼내 샐러드를 만들고 샐러드를 먹는 동안 물을 끓여 스프를 만든다.
식빵에 햄과 치즈, 훈제 돼지고기까지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고,
기다리기 지루할까봐 비스켓도 꺼내놓는다.
거기에 보드카까지, 마지막에는 디저트로 커피와 과일, 초콜렛까지 폼나는 점심상을 차린다.
배불리 먹고도 반이 남았으니 얼마나 많이 싸온 것인가??
우리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
산에서 그렇게 까지야 --


점심을 먹고 이어진 길은 주의를 요하는 곳이 부분적으로 몇 군데 있다.
길은 비교적 평탄하고 폭 30cm 이상 넓게 평지 길을 만들어 놓아
실수하지 않는다면 넘어지거나 미끄러질 일은 없지만,
그래도 실수로 발이 걸린다거나 잘못 딛어 넘어지면 바로 굴러
10여m 아래 바이칼 호수로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길이 종종 나타난다.
암반지대를 깎아 길을 내다보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길이 10여m 나왔다가는 좋은 길, 다시 20여m 나오고 그러길 서너번 반복한다.
대체적으로 1km 정도 주의를 요하는 길이 이어진다고 보면 된다.
다음에 여럿이 온다면 배를 한대 빌려 이 구간은 배로 이동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주의를 요하는 길이 끝나자 바로 자작나무 숲과 바이칼 호수 사이의 산책로가 볼쎄아깍띄까지 이어진다.
거의 12km이상 계속되는 이 구간은 길도 높낮이가 없이 거의 평지에 가깝다.
멀리 보이던 볼셰이깍띄가 구릉을 하나 돌면 더욱 가까워지고,
또 능선을 하나 돌면 코앞에 와있는 기다림과 가까워지는 설렘의 구간이다.


저녁 7시 리스트비얀카를 출발한지 8시간 만에 볼세이깍띄에 도착했다.
트레킹 거리 18~20km, 중간에 점심시간과 바이칼에 빠져 바라보며 흘려보낸 시간을 고려해도
10시간이면 누구나 가능한 트레킹이다.

볼셰이깍띄는 바이칼 호숫가에 있는 마을로 경치가 좋아 별장지대로 발전된 곳이다.
이곳에도 3층이나 되는 뚜르바잘을 현지 여행사 사장인 유리가 가지고 있다.
다른 뚜르바잘은 모두 개인 다차(별장)으로 아무리 좋아도 이용이 불가능한 것에 반해
유리의 뚜르바잘은 이곳의 유일한 상업용 숙박지이기도 하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지만 이 집은 볼세이깍띄에서 가장 크고 눈에 띄는 멋진 집임에 분명하다..


피곤해서 잠시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안드레이는 약속대로 바냐를 준비했다.
자작나무를 태워 돌이 열을 낼 정도로 온도가 올라가자 바냐하라며 방문을 세게 두드린다.
바냐는 러시아에서 좀 여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세간이다.
우리살림에 디지털 TV와 같은 격이다.
여유가 있으면 누구나 하나씩 갖길 원하고,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여유에 따라 시설이 차이가 많다.
바냐도 러시아인들에게는 꼭 그렇다.


작년 겨울 무지도 추웠던 시베리아에서 한낮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었던 그런 바냐는 아니었다.
그래도 둘이 보드카 한 병을 비운 즐거운 한 때였음은 마찬가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