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묘
2008.10.01 23:21



아버지의 묘
늘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그저 막연한 타인의 고통쯤으로 여겼다. 십 사년 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버지가 아주 사라지셨다고 듣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미국에 있었고 어차피 아버지를 오래 못 뵙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 이후, 삶이란 죽으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번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자유로를 달렸다. 북쪽으로, 통일로를 지나 임진각까지 뚫린 길이다. 미국 후리웨이와 같은 ‘자유로’ 라는 이름이 친숙하다. 통행료를 안 받는 공짜 길이다. 한국은 조금 속력을 낼 수 있는 곳은 가차 없이 돈을 받는다. 신기하게도 같은 이름을 지어 놓고 후리로 달리게 해 놓았다. 한쪽으로는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끼고 한강이 흐르고, 저 멀리 강화도가 보인다. 오른편 들녘에는 알이 실하게 꽉 찼을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었다. 

망향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실향한 이북5도민들의 자손들은 죽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할 부모님들을 생각하며 묘지공원을 조성했다. 어머니의 고향이 함경북도라서 그 묘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가 계시면 나중에 어머니가 합장 되시는 것이다. 자동차는 그 묘지공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앞자리에 앉은 남동생은 이틀 전 화장을 한 아버지의 유골을 꼭 껴안고 있다.
육년 전 남동생이 이민 간 이후로 돌보지 못한 산소 주위는 무지막지하게 우거져 있었다. 시댁 산소를 정기적으로 찾는 여동생은 익숙한 솜씨로 가지를 쳐내며 길을 만든다. 먼저 올라 간 남동생이 산소를 찾았다고 외친다. 숲을 헤치고 정신없이 들어가는 잠깐 사이에, 산 모기들이 사람의 피 냄새를 오래간만에 맡았는지 온몸을 죄 뜯어 놓았다. 뒤이어 무덤을 개장 할 두 남자가 새로운 관과, 곡괭이와 삽을 들고 올라오고 있다.
이천 평 선산 중앙에, 찌부러진 묘 밑에 아버지가 외로이 누워 계셨다. 무덤 한 가운데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잘 자라고 있다. 파 내려가니 먼저 관위에 덮었던 붉은 천이 다 삭아 반이 찢어져 나온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성인 ‘나라 정’ 자가 확실히 새겨져 있다. 아버지의 무덤이 틀림없다. 드디어 관 두껑이 열린다. 아버지는 옷을 다 벗으신 채 가지런히, 뽀송뽀송하게 누워 계셨다.
아버지는 두 번 돌아 가셨다. 그 날 순전히 나 때문에 오셨다 다시 가셔야 된다.
아니, 아버지가 뒤 끝이 있으셔서 나를 보러 다시 오신 것이다. 나는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진짜 뒤끝 있으세요. 저 번에 아버지 돌아 가셨을 때 미국에서 오지 않았다고 여태 섭섭하셨어요? 그렇다고 이렇게 엽기적으로 나를 만나러 오시면 어떻게요. 옷도 안 입으시고요." 아버지에게 또 투정을 했다.
한 남자가 새 관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머리를 옮겨 놓는다. 그리고 무심히,
“뇌수술을 받으시고 돌아 가셨군요.” 한다.
나는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버지 이제 내가 와서 우니 기분이 좀 풀리셨어요? 이제 노여움 푸시고 다시 편안히 가세요. 외롭게 계시지 말라고 우리가 사람 많은 곳으로 아버지 이사 시켜 드리러 왔어요.”
아버지에게 삼베로 된 새 옷을 입혀 드리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운무로 덮힌 지리산-
‘돌아 가셨다’ 라는 의미를 곰곰이 다시 따져 보았다. 이 세상에 오기 이전의 곳으로,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잠시 헤어질 뿐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모두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음이란 그냥 헤어지는 것 일 뿐이다. 그저 잠시 동안의 이별이 슬플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주 대하고 얘기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하는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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