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 산장~~~~~~~
2008.10.05 00:00
---곰배령 정상의 풀꽃 세상-----
친구가 갑자기 떠나잖다. ‘친구가 뿔났다’. 남편이 중국으로 혼자 골프 여행을 떠났는데 나라고 집에 만 있어야 되냐고 한다. 그래도 간은 작아서 남편이 돌아오기 전 까지 집에 돌아가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 동안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입력시켜 놓은 ‘세쌍둥이네 풀꽃 세상’ 이라는 이름의 펜션에 예약을 했다.
아무 계획 없이, 기대 없이 떠나는 여행에 설렜다. 나는 언제나 홀홀히 떠날 채비로 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자동차로 가면 세 시간 반 정도 면 도착할 수 있다는 데, 우리는 버스로 가야 해서 갈아타야 하는 곳에 시간을 딱딱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집을 출발해서 열 시간 정도를 허비했다. 두메산골 오지로 가는 중 제일 중요했던 버스는 다섯 시 반 하굣길에 한 번 밖에 없는 마지막 버스였다. 버스 기사는 동네 학생들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 까지 다 알 것 같이 집집마다 내려 주곤 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갈 진동리의 ‘풀꽃 세상’을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700M고지는 어느 덧 어스름해 지기 시작했다.
진동을,
사람들은 하늘과 아주 가까운 곳,
그래서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부른다.
또 사람들은 한겨울 내내 쌓인 눈..눈..눈...
그래서'한국의 캄챠카' 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발 700미터 ...영서 내륙의 깊고 깊은 골짜기
점봉의 품자 락은 남으로 넓게 펼쳐 내리고
조침령,북암령, 단목령, 곰배령의 ...백두 대간이
휘휘 돌아 진동을 품에 안고 있다.
진동은 깊고 그윽해서 마치 어머니 …….자궁과도 같다.
진동의 숲은 거의가 활엽수림이다.
오래오래 묵어서 …….절로 쓰러진 나무는 지면에 닿는 대로 차례차례 흙이 되어진다.
넝쿨들이 자연으로 늘어져 있는 숲은 더없이 고요하고 …….인공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점봉으로 오르는 길가 초입에도 금강초롱이 만개하고
어떤 안개 속으로는 멧돼지의 뒷모습이 ...야생의 냄새를 미쳐거두지 못한 채 숲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숲에서는 마술이 일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눈이, 얼음이 응달쪽에 남겨져 있어도…….때론 눈을 뚫고도 봄꽃이 피어나고
버석한 낙엽의 잔해를 달고도 여린 꽃봉오리들은 햇빛을 향해 ...개화한다.
보라의 얼레지
나즈막한 복수초, 그리고 솜털을 보송보송 달고서 피어나는 노루귀 ...
한없이 펼쳐진 은방울꽃, 한계령 풀꽃 군락
그 사이 이슬을 머금은 듯....풍성한 포기의 개불란...며느리밥풀꽃
멋드러지게 휘어진 주목나무들은 마치 요새와같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 ...백두의 능선에 자리하고,
산행을 하다 보면 …….
꽃 빛이 찬란하다거나 ,별처럼 수 놓여진다거나 ...하는 말들이 실감이 되고도 남는다.
겨울이 들면서 ...
산의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는다.
그렇게 여섯달을 ...
나무는 옷이 없이도 숲에 남겨져 흐르는 세월을 겪는다.

위의 글은 나를 매료 시켰던 집주인의 소개 글과 사진이다 . 성수기 다 지나고, 추석 지나고 해서 철지 난 그 곳은 썰렁 했다. 세 쌍둥이는 주중에는 현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 온다고 한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둘 뿐이어서 오히려 주인 쪽에서 우리를 경계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날이 어두워 지니 나는 괜히 드라마를 쓰고 싶어 졌다. 날이 흐려 별빛도 없고, 달도 뜨지 않아 밖은 괴괴했고 냇가에 물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암매장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노출 됐어요.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느라고 가는 소도시마다 머물러서 꽤 만난 사람이 많거 든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경직된 여주인은 나중에 다시 올께요 하고 벽난로의 땔감을 놓고 간다.
잠시 후 그녀는 초 고추장에 찍어 먹는 석이버섯과 잘익은 열무 김치를 들고 우리 방으로 마실을 왔다. 도저히 우리가 무서워 잠을 청할 수 없어서, 정면 대응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는지, 비집고 들어와 앉아 기선을 잡기 시작했다. 십육년 전 이 곳에 살기 시작한 얘기를 필두로 해서 ‘접신’을 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으스스한 동네 처녀 총각의 자살 얘기가 빠질리가 없다. 그리고 이어 나의 미래를 얘기해 주었다. 그 여자 얘기로는 하여간 나는 팔십세 일월 십일 까지는 살아 있어야만 한다. 마침내 첫날 밤 하이라이트는 그 다음 이어졌다.
“여기 같이 앉아 계시던 두 남자 어디 갔어요? 조금 아까 라면 물 부어 줬잖아요.”
친구의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이 보인다. 친구는 공포의 낯빛으로 변했다. 허둥지둥 애꿎은 라면 만 계속 먹고 있다. 그러고는 주인 여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무섭다고 우리 보고 데려다 달랜다. 문을 여니 기특하게도 진돗개 두 마리가 주인의 무서운 밤길을 호위하려 기다리고 있다. 그 밤 개도 너무 무서웠다. 우리는 문을 모두 꽁꽁 잠그고 벽난로를 지폈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이 뭔가를 쫓아 줄 것을 기대 하면서 말이다.

늦게 지쳐 잠든 터라 아침에 주인여자가 찾아와서야 깼다. 봉지 커피를 들고 왔다.
“아침에는 남자 귀신이 커피 안 타주나요.?”
우리는 같이 웃었다. 찬란한 아침의 햇살이 어제 밤의 일 들을 깡그리 부수고 있었다.
구월이 다 지나가고 있지만 밖은 아직 전체적으로는 짙푸른 초록이다. 산을 오르면서 자세히 나뭇잎들을 보니 초록이라는 한 색으로 말 할 수는 없다. 노란색으로, 붉으스름하게 변하고 있는 가을 초록색이었다. 산행 할 채비를 하고 점봉산 곰배령까지 갔다. 한국에서 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 된 곳이라서 그런지 정말 다른 곳과 차별 된 숲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날 밤 ‘귀곡산장 2’ 를 열렬히 기다렸으나, 역시 속편은 재미없다는 속설이 맞았다. 너무 인텔리전트하게 변해 있어서 저으기 실망이 됐다.
그 여자나 나나 서로 소설을 쓰고 싶었었나 보다.
여자는 국문과를 나와 신문에 칼럼을 쓰는 작가였고, 곧 ‘설피밭 편지’ 라는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진동리의 다른 이름이 설피밭이다.
많은 얘기 소재를 갖고 있는 세쌍둥이 엄마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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