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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건너편의 여자」

2006.05.25 22:42

김동찬 조회 수:477

오늘 저녁엔 한번 찬찬히 살펴 보시길  

봄비 스스스 내리는 저녁무렵 
혹시 당신 양복 뒷단을 
희고 찬 낯선 손이 몰래 다가와 
살며시 잡아당기지는 않는지  

혹시 당신 아파트 문 위에 
손톱자욱이 나 있지는 않은지
자동응답기에 숨죽인 흐느낌이 
녹음되어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일간지에 코를 박고 있는 동안, 그리곤
불밝은 전동차 안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들어가는 동안,
혹시, 건너편, 시외로 빠져나가는 플랫폼
어두운 한구석에 숨어서 한 여자가 당신을 
막막히 애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그녀가 가슴을 불어가는 바람을 견디느라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지는 않은지  

당신이, 문밖으로 쫓아 버린 여자 
당신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잊어버린 여자  

그 여자, 당신의 일상이 잊어버린, 그러나
어쩌면 당신의 영혼이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김정란 (1953 -  ) 「건너편의 여자」전문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남자라면 '건너편의 여자'는 언젠가 버려버린 여자를 먼저 떠올릴 수도 있고, 여성 독자는 잊고 지내고 있는 자신의 자아를 생각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옛사랑의 그림자, 차가운 도시에서 잃어버린 따스한 사람의 입김 등으로 한용운의 '님'처럼 다양하게 해석해볼 수 있는 여자. 건너편의 여자. 내 초라한 영혼까지도 사랑해줄것 같은 '그 여자'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오늘 저녁 우리를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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