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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쟈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 (1570 - 1652) 「가노라 삼각산아」 전문

 정완영 선생 댁을 방문했다가 근처 조그만 공원 안에 있는 삼전도비를 보았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을 한 기록을 남겨놓은 비다. 부끄러운 과거도 우리의 역사이므로 그 비를 보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옆에 '삼전도의 수난'이란 이름 아래 커다란 동판 그림이 붙어있는 현대판 비석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동판에는 인조가 머리를 땅에 박아 이마에 피를 흘리며 신하의 예를 표하는 그림이 담겨있었다. 
당시의 충신 김상헌은 병자호란때 주전론을 주장하고 후일에 청나라로 끌려가면서 위의 시를 남겼다. 그 치욕스런 그림 대신에 이 시를 새겨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완영 원로 시인은 이점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 ㅎ ㅎ 2006.06.21 23:13
    서로 칭찬 하는 것은 참 쉬워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따르려 하죠.
    과연 그게 롫은 건지.

    역사를 배우며
    치욕이 아니라 '모화 사상' 바로 그것인 것을 알면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미 '모' 중국은 어머니 같은 나라 라는 말.
    부정할래도 모든 기록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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