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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나비의 여행」

2006.06.27 08:11

김동찬 조회 수:499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정한모 (1923 - 1991) 「나비의 여행」 전문

아가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 절벽과 전쟁, 독수리 등을 만나고 소스라쳐 돌아온다. 일제로부터 갓 벗어난 아가였던 우리 조국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지 반백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다. 
그래서 전쟁은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러나 대화와 눈물 만으로 막을 수 있는 전쟁이 있었던가. 전쟁에 휘말려 목숨과 가족을 희생시킨 분들 덕택에 자유와 생존을 누릴 수 있었던, 전후세대인 내가 너무 간단하게 전쟁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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