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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떠버리 아줌마

2008.02.01 14:48

민디 조회 수:767

 떠버리    아줌마

 

 

아직도 지나치게 명랑한 나는 가끔 주위를 당혹스럽게 한다.

조용히 해야 할 자리에서도 내 얘기에 나 스스로 도취되어서, 목소리의 음계가 올라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조용하고 공기 좋은 산타 모니카시에 최대 공해라면 떠버리 엄마의 목소리라고 한다. 내가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라치면, 아들은 검지를 빨리 그의 입으로 올리면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든다. 항시 마뜩해하지 않는 아들의 집에서 마침내 거의 쫓겨나다 시피 해서 엘에이 공항을 떠나 서울에 오게 되었다.

 

“엄마, 나 왔어요.”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반가운 몸짓으로 방에서 질척질척 다리를 끌며 걸어 나올 엄마가 머리 속으로 그려졌다. 잠겨 있지 않은 문을 여니 왠 노파가 서 있다. 툭 튀어 나온 눈에 비쩍 마른 외계인 노인이 부들부들 떨며 내 엄마의 목소리를 낸다. “왔니? 배고프지?” 일년 여 만에 다시 만난 엄마의 모습을 보고 무서운 시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살짝 만 밟아도 바스러지는 겨울 낙엽 같은 엄마는 물기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무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머리카락은 바짝 말라버린 옥수수수염을 이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 광경은 어떤 강력한 불안을 예고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올가미에 포박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래층에 있는 택시에서 짐 가져 올 깨요”

도망치고 싶었다. 그리고 곧 짐을 들고 올라올 기사를 말려 그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 드린다고 꽉꽉 눌러 싼 무거운 짐은 낑낑대며 이미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히 반가워야 할 표정의 관리가 잘 안돼서 무참한 손놀림 밖에 할 수 없었던 나는, 선물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거의 하루를 못 잤어요. 잠부터 자야겠으니 내일 얘기해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슴이 한 번 더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엄마는 어제 은행에서 찾아 온 돈 이십 만원을 내 놓으란다. 큰일이다 싶어 온종일 여기저기 의논해서 서울 대학 병원에 진찰을 예약했다.

다음 날 밤은 시차 때문에 새벽 두시에 깼다. 방 밖 현관 쪽에서 문소리가 났다. 엄마 방으로 가봤는데 엄마가 없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화려한 모자를 쓴 외출복 차림으로 지팡이를 짚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너무 놀라 어이없게도 망연히 엄마의 다음 행동을 지켜봤다. 순간 어떤 극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멈칫 했을 수도 있다. 늘 그렇듯이 택시를 잡으러 큰 길로 나가는 것이다. 이제 그만 엄마의 안전 때문에 멈춰 세워야 한다.

“엄마 어디 가?” “응 호텔, 누구를 만나기로 했어” “이 새벽에 누굴 만난다고 그래” “지금 밤이니?”

 

후에 대학병원 의사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섬망이라는 증세다. 주변 상황을 잘못 이해하며 생각의 혼돈이나 방향 상실 등이 일어나는 정신의 혼란상태가 주 증상이다. 엄마는 여러 가지 인지능력 검사와 뇌혈관검사를 하고 나서 중기로 치닫고 있는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사 중, 공부를 못해 묻는 질문을 대답 못하는 학생처럼 쩔쩔 매는 엄마가 매우 안쓰러웠다. 지금은 약을 처방 받고 섭생에 신경을 써드렸더니 많이 호전되기는 했다. 일상생활의 불편은 그리 크지 않으나 새로운 것은 기억 할 수 없고, 숫자에 대한 개념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생에 대한 본능은 더욱 강해져 식탐을 많이 한다.

 

그 동안 오랫동안 복용해 왔던 항 우울제와 신경 안정제 등, 여러 가지 약들이 기억력 저하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한다. 그리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십 오년을 혼자 외로이 사신 것도 일조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치매가 걸릴 확률아 낮다는 보고서가 있다. 오 분 이상 우울이 계속 되지 않고 잠들어 버리는 내 성격을 고마워야 될 것도 같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와서 전후 사정을 얘기 하며 떠드는 엄마가 네 짐을 덜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나이를 잊은 채 지나치게 명랑하고, 가끔은 너무 과격한 우스개 소리를 남발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성향을 이해해 주는 주위의 사람이 비록 소수가 될지언정 나는 나 인 채로 살아 갈 것이다.

 

불타오르는 듯한 세찬 감정이라는 열정과 새롭거나 신기한 점에 끌리는 마음인 호기심, 아직도 이 두 단어가 나에게는 친숙하다. 당분간은 계속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떠버리 아줌마의 행진을 계속해야지 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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