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유게시판

 

아콩가쿠아 단독 등반기


글. 사진. 이정현(재미 한인산악회 회장)


발문.

안데스 산맥 최고봉 아콩카쿠아를 단독 등반한 이정현(65)씨가 등반기와 사진을 보내왔다.

홀로 행한 입산허가와 베이스캠프까지 이르는 여정. 그리고 4박 5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정상을 등정한 노익장은 개인 등반을 꿈꾸는 산악인에게 소중한 정보가 될 것이다.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경비 역시 최소한이라는 점도 참고할 사항이다. 


안데스 산맥으로의 등반여행

2007년 12월 4일부터 13일까지 우리 산악회 김명준 회원과 단 둘이 안데스 산군으로 등반 여행을 떠났다. 그와 함께 에콰도르 최고봉 침보라조와 코토팍시, 일리니자 산등 3개봉을 등반했고 운 좋게 모두 오를 수 있었다. 등반을 마친 후 우리는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헤어졌다. 김명준 회원은 로스엔젤리스로 귀환했고 나는 아르헨티나 가야 했는데 내 목적은 남미 최고봉 아콩카쿠아(6960m) 단독등반을 하기 위해서였다.


키토에서 아콩카쿠아 등반 깃점이 되는 아르헨티나 제 4위의 도시 멘도사에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인 15일이었다. 날씨는 엘에이 인근의 사막 같은 더위였지만 넓은 길에 가로수가 울창했다. 택시를 타고 시내로 가 숙소를 정하고 엘에이에서 소개 받은 김치봉씨를 찾아 갔다. 그분의 소개로 아콩카구아 등반에 대하여 잘 아는 또 한명의 한국 분을 만났는데 단독등반 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크게 걱정을 한다. 그 분에서 받은 정보로 입산허가를 받는 관광성을 찾을 수 있었는데 다음 날이 일요일 임에도 문을 연다고 했다.


이튿날 오전 관광성으로 가니 아콩카쿠아 등반을 대행하는 가이드 회사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입산료는 1000페소였다. 달러로는 334불 정도다. 돈을 수납하는 곳은 5분 거리인 허름한 전화국 창구였다. 영수증을 첨부하여 등반 신청서에 인적 사항을 기재하여 제출했다. 담당관이 환경보호와 오물 처리에 대하여 설명하며 규정을 어길시 100-600불상당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경고한다. 그 규정을 이해했다는 서명을 하고 나니 등반 허가증을 주었다.

전문가이드 회사에 맡기면 이런 사소한 문제는 모두 해결 될 것이나, 가격도 그렇지만 단독등반 이므로 처음부터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가이드 회사 사람들에게 더 정보를 얻고 싶어 대화를 나누려 했으나 나 같은 사람은 별로 환영하는 눈치가 아니다. 아콩카구아를 오르려는 대부분의 경우 베이스캠프 사용과 짐 수송 버스 그리고 나귀를 트레킹회사와 계약한다. 그러나 나는 짐이 적기에 그 과정을 생략하려 했으니 버스에서 내려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가이드 회사를 찾으니 짐이 적던 많던 나귀 한 마리에 120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인터넷으로 확인한 정보로는 한 마리가 60Kg을 지고, 1Kg당 2불에 불과했다. 내가 부탁할 짐은 20Kg 정도인데 바가지다.

그러나 초행에 다른 선택을 할 여지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베이스캠프 숙박이 하루에 20불이라고 한다. 오후 내내 등산 장비점을 들려 연료를 사고 출발 준비를 했다. 더운 날씨에 변질 될까 식량은 내일 오전에 사리라 마음먹었다. 김치봉씨가 내 숙소로 와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성찬을 대접한다. 그리고 음식을 싸 주려하는 걸 사양했는데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오전 9시 예약한 합승버스가 오기 전 음식을 사려 나갔지만, 모두 9시 이후에나 문을 연단다. 겨우 문을 연 구멍가게에서 시들한 과일과 고구마 몇 개를 구입했다. 가는 도중 식량을 살 거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식료품점이 없으므로.


아콩카쿠아 베이스캠프

버스는 광활한 사막지대를 5시간 정도 달려 흙탕물이 흐르는 협곡으로 들어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콩카쿠아 주립공원 입구에 내려준다. 사무실에 들어가 허가증을 제시하고 쓰레기 봉지와 의무실에 제출할 서류를 받았다. 이젠 정말 혼자다. 배낭을 메고 뮤라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길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곳을 오기 위하여 인터넷과 책자에서 공부한 기억을 되살리며 물길을 따라 열심히 걸었다. 한시간 가량 걸었을까. 다리를 건너니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확인하고 다시 걷기 시작해 3시간쯤 지났을 때 오늘의 목적지 천막촌이 나타난다.

그 중에는 의무실도 있었다. 의무실 직원이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등을 체크 하더니 전부 이상 없다며 아침에 다시 오라고 한다. 가이드 회사에서 쳐 놓은 식당으로 가 매식을 하려 했으나 주방이 너무 더러워 그냥 나왔다. 텐트는 이미 멘도사에서 베이스캠프로 보냈기에 침낭하나로 비박을 하기로 했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 잘만했으나 가이드 회사 텐트에서 묵는 사람들이 자꾸 힐끔거린다. 배가 고파 멘도사에서 산 고구마와 과일을 좀 먹었으나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이런 불편 때문에 미국 가이드회사를 선택하면 보통 보름 일정에 3000불 내외를 받는다. 내 계획대로라면 불과 5- 6백불 정도와 4박 5일이면 끝날 터엿다. 돈도 문제지만 나는 모든 걸 혼자 해 내고 싶은 것이다.


아침에 다시 의무실 텐트로 들어서 검진을 받았다. 역시 이상 없다는 말이다. 배가 고팠지만 이른 아침이라 식당텐트는 문을 닫았기에 그냥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이정표는 그곳까지 8시간 정도 걸린다고 적혀있다. 걷다가 got볕이 좋기에 침낭을 말리면서 사과와 양갱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멘도사에서 김치봉씨가 싸 준다는 음식을 가지고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루한 길에서 나귀 시체를 두 번이나 봤다. 등짐을 지며 평생 고생하다 길에서 죽은 것이다. 이제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콩카쿠아 사면 뒤편으로 에베레스트 갔을 때 매일 보았던 아마다블람 닮은 산이 보인다.

베이스캠프 가까이에선 좀 더 경사도가 가팔라졌다. 드디어 뮤라 베이스캠프. 천막 앞엔 멘도사에서 보낸 짐이 나를 반긴다. 페드로라 불리는 가이드회사 직원이 전표를 확인하고 비어 있는 아무 텐트나 사용하라고 한다. 아직 시즌이 일러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천막 안에서 짐 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7-8명이 모여 있다. 모두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고소 적응 차 몇 일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난 가이드 회사를 통하여 온 것이 아니기에 저녁 한끼에 20불을 내야 했다.


이튿날은 조금 불편한 허리도 풀 겸 정찰을 하며 하루 쉬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 고도를 올리자 어제 내렸다는 눈이 쌓여있다. 뮤라 베이스캠프가 이미 4370m를 넘어 섰는데도 고소증은 없다. 에콰도르 침보라조 등반이 덕을 본 것일까. 다만 계속되는 등반에 몸 컨디션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돌아와 라면에 한 통 뿐인 김치를 따 성찬을 즐겼다. 그 짠 김치를 반통이나 먹어 버렸다. 페드로에게 물으니 앞으로 2-3일간은 날씨가 좋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일 니도(5400m)캠프까지 가고, 모래 베르린(5900m)캠프에서 잔 후 정상을 올랐다 하산하면 될 것이다. 2박 3일에 끝낼 작정을 한 것이다.

내 컨디션을 생각해서 텐트와 장비를 니도캠프, 베르린캠프까지 포터에게 지우기로 했다. 당연히 천막은 한 동이었으므로 니도에서 잔 후 걷어 올릴 것이다. 포터에게 줄 장비와 내가 지고 갈 품목을 챙겼다. 니도캠프엔 식수가 없으므로 가지고 가야했고 두 번째 베르린캠프는 눈이 있으므로 녹여 사용하면 될 것이다. 포터에게 줄 짐을 달아 보니 15Kg정도였고 내 배낭은 10Kg이 나온다.

이튿날 오전 10시에 출발했다. 퇴석지대라 좀 미끄러웠으나 그런대로 걸을 만 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나 결국 위에서 모두 만나게 되어있다. 니도캠프에 도착한 시간은 출발 한지 4시간이 채 안되어서였다.

가이드 회사가 쳐 놓은 천막 곁에 내 텐트를 쳤다. 미리 와 머물고 있는 그들의 고객은 4명이었다. 준비한 누룽지를 끓여 저녁을 먹고 보온병에 물도 채웠다. 아무래도 먹는 것이 부실하다. 그리고 그동안 강행군해 온 몸도 좋지 않지만 이튿날 포터와 함께 최종 캠프인 베르린캠프로 향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눈이 더러 나타났으나 아이젠을 신을 정도는 아니었다.


포기할 번한 정상

베르린캠프는 최악의 캠핑 장소였다. 어쩔 수없이 천막을 쳤지만 오물 냄새가 진동한다. 근처 눈도 먹지 말라고 귀뜸한다. 멀리 떨어진 곳의 눈을 퍼다 녹여 내일 있을 등반 준비를 했다. 3통의 물과 코펠에 가득 물을 만들어놓았다. 옆 천막에 프랑스에서 온 두 명의 산악인이 있었는데 오늘 오전 정상 공격에 나섰다가 너무 춥고 고소가 와서 그냥 내려왔다고 했다.
이정현 2.jpg
신 새벽에 나서려면 루트를 익혀놓아야 할 것 같아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한동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오후 6시쯤 자일로 묶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몹시 지쳐 보였다. 그에게 등정 축하 덕담을 건넨 후 물으니 아이젠은 시작부터 착용해야하는데 피켈은 필요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해가 지니 몹시 추워진다. 일찍 누웠으나 잠이 쉽게 올 리 없다. 더 힘든 산을 위한 훈련이라는 생각에 평소에도 내 몸을 혹사 시켜왔으나 은근히 컨디션이 걱정이다. 그리고 역시 단독등반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몽사몽 밤을 지새우고 4시에 일어나려 했으나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옷으로 싸 놓지 않은 물통은 꽁꽁 얼어 버렸다. 너무 추워 일어나기 싫었으나 기어이 침낭에서 빠져나와 등반 준비를 했다. 상의는 세 겹, 하의는 두 겹을 입었다. 그 위에 오버트라우저를 입고 스펫츠와 아이젠을 착용했다. 장갑을 낀 후 6시에 천막을 나서니 아직 깜깜하고 아무도 없다. 바람은 없고 산은 깊은 침묵에 잠겨있다. 등반을 시작하려 몸을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시원치 않다. 고소증인지도 모른다. 천천히 위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크러스트 된 눈에 아이젠에 밟히는 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얼마나 올랐을까. 사위가 밝아오기 시작했고 저 아래에서 몇 사람이 올라온다. 너무 힘이 들어 쉬고 있는 나를 추월한다. 그들 뒤를 따르려 했으나 몸이 안 따라 준다. 발이 너무 시려 등산화 속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 보지만 소용없다. 나를 추월한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왔다. 호흡이 턱에 차고 정신이 몽롱하지만 그들의 발자국을 위로 삼아 한 발 한 발 오른다. 세상은 서서히 밝아졌다. 숨을 고르며 뒤를 보니 또 3명이 올라온다. 그걸 보니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큰 위안이 된다.
 
끊임없이 오름짓을 하는 동안 드디어 햇빛이 나기 시작한다. 햇빛이 얼마나 고맙던지. 지구상에 제일 높이 있다는 부셔진 대피소 인디펜시아에 도착해 쉬고 있으니 뒤의 세 명도 기진맥진하며 올라왔다. 그들은 멕시코 산악인들이었다. 거기서 보온병의 차를 좀 마시고 간식도 했다. 힘이 좀 나는 가 했는데 조금 지나자 다시 등반이 어려워진다. 베르린캠프에서 정상까지 고도차 1000m. 이 정도의 높이면 몇 번이나 쉬어야 할까. 1m를 가는데 세 발이라면 3000 발만 오르면 될 것 아닌가. 30보가고 한번 쉰다고 보면 100번만 쉬면 정상이다. 그러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지 현실은 달랐다. 30보가 아니라 이제 3보가고 한번 쉰다.

오죽 힘들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또 힘 빠지는 일은 6500m부터 무수히 고도계를 드려다 봤는데 아직도 6720m다. 세 발작 마다 쉬며 꾸준히 올랐지만 고도도 올라가지 않는데 이제  등반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졸리고 어지러운 머리로 눈밭에 앉아 등반 포기를 위한 자기변명을 생각했다. 나는 혼자인데 내려 갈 일도 생각해야 한다. 이번 등반여행에서 할 만큼 하지 않았느냐. 이런 체력으로 더 진행하다간 위험해 질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멕시코 산악인 두 명이 헉헉 거리며 내 곁을 지나간다. 난 등반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정상과 주변 풍경을 찍고 있는데 뒤에 쳐진 멕시칸 한 명도 힘겹게 올라왔다. 내 앞에 지나는 그를 보니 한발 마다 쉰다. 그러면 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걸 보니 오기가 생긴다. 나도 그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오르는 일행이 있다는 생각으로도 힘이 된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200m 전방의 정상이 왜 그렇게 먼지. 거기까지 대략 두 시간쯤 걸린 것 같았다. 정상을 먼저 오른 멕시코 산악인이 동료에게 힘내라고 고함을 친다. 그 격려 소리가 내게는 꿈결에서 들리는 듯하다.    
               

마침내 펑퍼짐한 넓은 바위 위에 십자가가 보인다. 정상이다.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후 3시 40분이었다. 오전 6시에 출발했으니 9시간 40분이 걸렸다. 정신을 차린 후 그들에게 부탁하여 십자가를 넣고 사진을 찍었다.

추위에 떨며 같이 하산할 생각으로 그들의 촬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왠 페넌트가 그리 많은지. 찍고 또 배낭에서 또 그걸 꺼내는 것이다. 더 기다릴 수가 없어  혼자 먼저 하산을 시작했다. 체력이 빠진 탓인지 높낮이가 가늠되지 않고 거리 감각도 헛갈렸다. 눈으로 목을 축이고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며 하산을 했다.

정신이 없는지 도착해야 할 베르린캠프를 지나쳤다. 겨우 찾아 그쪽으로 가며 비틀거리는 나를 본 베르린캠프 포터가 다가오더니 오랜지 주스를 주고 배낭을 받아 든다. 그리고 텐트 안에 눕히고 아이젠을 벗겨 준다. 너무 고마웠다. 이날은 크리스마스이브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22일이었다. 물기 빠진 풀처럼 지친 몸은 따듯한 인간애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였다. 13시간 등반을 한 셈이다. 어떤 알지 못 할 성취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건 고비마다 포기하지 않고 단독등반을 해 낸, 내 자신에게 나 스스로 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었을까.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