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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여우비」

2006.06.13 14:39

김동찬 조회 수:426

여우같은 여름날 내 남편을 홀려 춤을 추며 간을 빼먹는 여우를 잡기로 했다 지금 관악산에서 둘이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마음상하지 말고(더 이상 상할 마음도 없겠지만) 비디오 카메라를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김국장 한테서 연락이 왔다. 오늘은 기어코 잡고야 말리라 피를 말리며 기다리는데 여우비가 쏟아지고 다시 연락이 왔다.
관악산에서 내려와 롯데백화점으로 들어간 여우의 꼬리를 놓쳐버렸다고 내일은 꼭 잡겠노라고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먹고 물처럼 그냥 흘러가라고 그러나 나는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라 여의나루에 나가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강을 건너가는 여우와 내 남편이 보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지인 (1948 -   ) 「여우비」전문

연속극과 주간지에서 신물나게 보는 불륜 이야기가 왜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무엇을 얘기하는 가가 아니라 어떻게 얘기하느냐에 따라 시가 되기도 하고 포르노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여우비는 내리고,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여우는 남편과 강을 건너갔다. 여우비 잠시 왔다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의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렇게 꿈인 듯 스쳐가는 것일까. 그들이 실제로 건너갔는지 알 수 없지만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겪는다. 돌아오지 않는 강 건너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있는 마음이 되어본다. 무겁고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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