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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절집 그리고 산

2008.02.15 09:37

민디 조회 수:1289 추천:-1

 

            절집 그리고 산

   

    이제는 두메산골이라는 곳이 실종 됐으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어리석고 어처구니없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과거가 정지 되어있기를 바랐던 것일까.


   고속열차는 전라남도 나주 역에 우리를 부려 놨다. 멀리 느껴졌던 땅 끝 마을 해남과 가까운 곳이다. 세 시간 여 남짓으로 서울에서 육지가 끝나는 곳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나주 역 주차장에는 스님이 어제 세워 놨던 빨간 에스유브이차가 있었고, 거기서 삼십 분 정도 거리에 있는 영암 읍으로 떠났다.


   짙푸른 소나무와 청청한 대나무로 이루는 숲이 절집으로 올라가는 길의 시작  이었다.  사위가 어두워진 저물녘이 되었다. 망월사 경내로 들어가면서 어렴풋이 문명을 아주 떠나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채에서 환한 형광불빛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창호지문 밖으로 흐늘흐늘 흐르는 호롱불빛을 기대 했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펴 방구들을 뜨뜻하게 하고, 가마솥에 밥을 짓는 일은 다음 날 아침에도 없었다.  보일러로 방을 덥히고, 가스레인지로 반찬을 만들고, 전기압력밥솥으로 밥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랑 똑같이 사는 곳을 기차타고 멀리 온 것이다. 딱히 다른 것은, 절집이니까 부처님이 계신 것 뿐이다. 


  공양이라고 말 하는 식사는, 처음 들어보는 온갖 풀들로 차려졌다. 보리순 된장국,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유채로 만든 나물, 미역같이 생긴 감퇴 쌈, 파래 과의 매생이 초무침과 국 등이었다. 파나 마늘 양파 같은 자극성 양념을 별로 쓰지 않는 게 절 음식의 특징이었다. 특히 한국산 참깨가 중요한 조미료였다. 평소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이런 청정한 음식들로, 내 몸속 어딘가에 끈적끈적 붙어 있을 묵은 때 들을 벗길 수 있을 터이다.  절의 주지 스님은 사찰 음식의 일가견이 있으셔서 한 달의 한번은 서울불교방송에 출연 하셔서 요리강습을 하신다.


  아침을 먹고 경내로 나갔다.  색깔이 있다.  뒤로 나즈막하고 둥그스레한 두 봉우리 산이 푸릇푸릇하다. 대웅전 뒤 담장을 친 듯한 그 푸름이 무엇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사철 꼿꼿이 서있는 대나무들 이었다. 앞마당의 둥치 굵은 동백나무에 수많은 꽃 몽우리들이 핏빛정열을 터트리려는 아우성의 조짐이 보인다. 춘설에 피는 봄에 전령사 매화나무에는, 수줍은 소녀의 분홍빛 젖꼭지가 송송이 달려 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옆에는 이파리 없는 목련나무의 꽃봉오리도 한껏 부풀어 있다. 참 여기가 많이 남쪽이라지.  남쪽이라는 단어는 따뜻한 빛과 색을 담고 있지.


  절집은 설과 입춘을 맞아 분주하다. 대웅전과 약사전에 있는 놋으로 된 모든 불기들을 번쩍번쩍 닦아야 된다고 스님이 약간 조바심을 하신다.  보살님으로 불리는 두 분과 하루 종일 열심히 닦았다. 한 보살님에게 물어 봤다.

 “이 고장 영암에 특산물이나 유명한  것이 있습니까?” 대뜸  “있지라. 가수 하 춘하가 여기출신이라 영암 아리랑 노래도 불렀고, 저어기 법당 밖으로 보이는 월출산이 겁나게 명산이지라. 그라고 보니 서울 보살이 하 춘하와 많이 닮았당 께.”

손님 대접에 대한 응대로, 그 가수와 닮아 보이려고 자꾸 눈을 치떠야 했다.


  입춘 날은 절집에서 중요한 절기다. 삼재를 맞는 가족들의 속옷을 태워, 무사히 한 해를 보낼 기도를 드리는 날이다. 종교라는 것은 간절히 비는 마음 인 것이다. 순박한 신도들의 염원을 보면서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그들은 어려운 한자말로 된 천수경의 뜻은 모른다. 그냥 믿는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득부득 그 뜻을 알아내서 읽고 싶었다. 면벽 수행 같은 것을 해서 그 뜻을 깨달아 낼 재주는 더욱 더 없었지만, 알음알이를 고집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불심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하심이라는 데 신도들은 그것을 갖추고 있었다.


   전라도에서 주지스님으로 이 십 여년을 보내고 계시는 똘망똘망한 경상도 여스님은 무엇인가 큰 것을 안고 있는 듯 느껴는 진다. 그러나 아직 가늠할 수도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었고, 적응 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스님은 나랑 친해질 량인지 시장구경 나가자고 하신다. 나를 위해 시장에 오신 것이다. 옥수수 알을 가져와 뻥튀기도 하고, 꼬막도 사고, 칠 흙 삼단 머리채 같은 매생이도 사고,  황토 흙이 너덜너덜 붙은 향기 나는 시금치도 샀다. 신도들이 불단에 바친 쌀로 절편을 만들려고 방앗간도 갔다. 그리고는 아침마다 월출산을 그윽하게 보던 나를 산 밑 주차장에  데려다 주셨다. 날이 짧으니 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라고 다짐 하신다.


   다른 산에서는 별로 볼 수 없었던 대나무 숲이 바람에 맞아 꺼억꺼억 운다. 뜨는 달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는 월출산.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가 계속 흥얼거려졌다. 그 고장 분들은 이 산이 중국의 황산보다도 낫고,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이윽고 구름다리에 이르러서야 과연 수긍이 갔다. 우뚝 솟은 두 기암 봉우리를 잇는 구름다리 중간에서, 내 두 다리가 바들 거렸다. 그래도 어렵사리 한 바퀴 빙둘러보았다. 여러 형상들의 기암괴석들을 보니 마치 거대한수석 전시장에 온 것 같았다. 아뜩한 허공을 두어 번 왔다 갔다 다니다, 아쉬웠지만 ,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는 산을 내려왔다. 버스 터미널 까지 눈보라 길을 길게 걸었다. 그리고 설날이 내일 모레라서 서울로 귀향했다.


  집을 떠나는 것은 집을 절실히 생각하려고 떠나는 것인가.

또한,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나 간 풍경을 생각한다. 지나간 사람은 잠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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