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 24 Mt. Wilson산행
2024.12.02 14:05
오늘은 7명이 산행을 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벽에 붙은 달력을 뜯어내는 기분이 묘하다.
오늘이 12월 1일.
이미 지나버린 11월 달력은 이제 필요 없다.
새해라고 새 달력을 걸어 놓은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그렇게 시간은 저 혼자 가고 있다.
체조를 마친 후 산행 출발 전 유경영 회장이 강수잔회장 이야기를 한다.
조촐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려는지 아직 연락이 없다고.
모두 더 이상 말이 없다.
단체방 카톡에서 그녀의 산악회 사랑을 읽을 수 있다.
강회장은 병원에서도 전화를 하여 산행 참석을 권유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 이 산 Mt. 윌슨도 그녀와 함께 많이도 올랐다.
Mt. 윌슨 뿐일까.
지난 30여년 동안, LA 주변의 산은 거의 다 올랐다.
그런 그녀가, 며칠 전 지워졌다.
오늘 아침 11월 달력처럼.






훠스트 워터 표지판을 지나자 트레일에서는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훠이 훠이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너무 고음이 높아 흉내 내기가 힘들지만 누가 듣는 것도 아니니 어떠랴.
그러고 보면 가수 김광석은 시인이다.
아니 철학자다.
그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수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이유가 그거일 거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인생이, 시간이,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허망하다는 건가?
허공에 흩어진 담배 연기처럼, 내 기억이라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우리 기억 창고에 소중히 간직한 것들에는 도데체 무엇이 있을까.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트레일엔 도토리가 지천이다.
Mt. 윌슨은 눈이 드물 정도로 따듯한 산이다.
활엽수들이 많기에 도토리나무 역시 우점종.
가끔 도토리 때문에 발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문득 스토로베리 메도우 산행이 떠오른다.
그때도 이맘때였을 것이다.
그곳도 도토리나무가 숲은 이루고 있었다.
강수잔 회원은 점심을 먹은 후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줍는 게 뭐야, 그냥 쓸어 담을 만큼 밤톨 닮은 도토리가 많았다.
그 몇 주 후 산행에서 우리는 강수잔 회원 손 맛 나는 도토리묵을 먹었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올라가도 가도 끝이 없는 트레일.
Mt. 윌슨 정상은 멀고 그러므로 길다.
왕복 15마일.
오란차 캠프를 지나고 가파른 만자니타 벤치를 향해 오른다.
힘들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이 노래에서 가장 높은음이 필요한 구절이라 악을 쓴다.
다행히 트레일에 사람들이 없다.
하지만 악을 써도 가수 되기는 틀렸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정말 절창이다.
이러니 이 노래가 음악 평론가들에게서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될 수밖에.
후렴구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자꾸 반복해 부른다.
낮은 음자리이므로.
이 구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건 쓸데없는 짓.
우리는 정말 모든 것들에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중이니까.




가사를 토막 내어 이해가 불편했다면 2절을 통째로 불러보자.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 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만자니타 능선 벤치에서 한참을 쉬며 갈등한다.
힘이 들어, 여기서 돌아 서려다가 불현듯 든 생각.
나이 들수록 점점 조금씩 정상은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 이별할지도 모르는 산정.
오를 수 있을 때 오르자.





전원이 정상을 찍고 돌아서는 느낌이 좋다.
낮게 가라앉았던 우울이 파란 하늘가로 흩어지는 게 보인다.
어차피 갈 곳을, 뭐 조금 일찍 갔다고 생각하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가, 사실 아닌가?
그리고 머지않아 만날 것 아닌가.
산에 들어섰으면 단순한 걸음에 집중하자.
햇볕과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며 걷는 이 순간에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푸른 하늘처럼 기분이 맑아 진다.





긴 그림자 앞세우고 휘휘, 휘파람 불며 Mt. 윌슨 하산을 마친 날.
또 하루 멀어져 갔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우리에게는 이별보다, 만나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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