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 25 아이슬립Mt. Islip 산행
2025.03.03 13:15
오늘 산행에는 3명이 참가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 아니 덕분에 크리스탈 레이크 주차장이 비어있다.
게으른 배낭 속에 일년내내 처박혀 있는 비옷을 오늘은 사용할 수도 있겠다.
꽃피는 춘삼월이니 눈 구경은 저만치 사라졌다.
헛 둘 스트레칭을 마치고 산행 시작.
천지간 안개가 자옥하다.
우뚝 선 나무들이 안개 속에 그림자처럼 도열해 있다.
유회장이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가 다닌 길이 아닌가 봅니다.”
그렇게 착각한 건 안개 때문이다.
언제 안개 낀 날 산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안개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안개가 자옥한 오늘을 우연히 만났을 뿐.
그러므로 자주 찾았다고 생각하는 아이슬립은 기실 처음 만나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갑자기 잘 알지도 못하는 반야심경 구절이 떠오른다.






떼로 말 달리는 병사들처럼 안개는 골바람을 타고 산정을 향해 진군 중.
파도처럼 일렁이며 달리는 안개 장막 사이 파란 하늘도 언 듯 보인다.
물기 머금어 더욱 청정한 숲도 안개 속에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적막하고 고요한 순한 산길을 걷는 기분.
우리는 노멀루트인 윈디갭 트레일 대신 아이슬립 릿지 트레일을 선택했다.
그게 신의 한 수.
순한 트레일에 숲과 능선을 희롱하는 안개 속 파노라마 화첩 산행.
그저 좋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세상은 아름답고 산은 언제나 우리를 받아 주는 너른 품.
한국에서 사용되는 아름다운 말 중 ‘꽃샘추위’가 있다.
꽃이 피는 게 샘이 나서 슬쩍 찾아온다는 추위.
그 말처럼 산야는 싱그러운 초록인데 골바람은 차다.
이런 찬 바람이라면 우리는 정상에서 상고대를 만날지도 모른다.
상고대는 다른 말로 ‘나무서리’ 또는 ‘서리 눈꽃’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겨울 산행 중 눈꽃은 질리게 보았으나 상고대는 드물게 만났었다.
안개가 무희처럼 춤을 춘다.
골바람을 타는 안개가 하얀 치마자락을 펄럭이며 풍경을 감추고 또 보여준다.
천지창조 장면이 이러할까.
시야 가득한 와이드 화면을 하얗게 메우고 춤추는 안개 산행.
진짜 날 한번 잘 잡았다.
이 순간 무엇이 부러울까?
우리가 정말 부러워해야 할 것이 있기는 한 걸까?
안개 커튼 사이로 햇살도 나타나고 가짜 같은 파란 하늘도 나타났다 사라진다.
다시 한번, 색즉시공 공즉시색.
그런데 고도를 올리며 쓸데없는 과학적 상식이 떠오른다.
높이를 백 미터 올리면 기온은 0.6도 내려간다.
바람이 불면 풍속에 따라 체감온도는 더 하강 한다.
아이슬립 정상은 8200피트, 2500m가 넘는다.
당연히 더 기온이 떨어진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진짜 춥기 때문이다.





산행 시작점은 춘삼월다웠는데 고도를 올리며 추워진 것이다.
와르르르 안개를 밀어 올리는 골바람 덕에 체감온도 역시 더 낮아졌다.
아이슬립 릿지 능선에 오르자 양쪽 골바람이 더욱 세차게 분다.
그러나 이제 정상은 지척이다.
그런데... 이게 왠 보너스?
손이 곱았던 추위와 바람 덕분이겠다.
나무등걸과 가지 그리고 솔잎에 피어난 서리꽃,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이 가까울수록 상고대가 제철을 맞았다.
사전에 따르면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라고 말한다.
좀 더 설명한다면 안개처럼 미세한 물방울이 나무에 꽃처럼 하얗게 얼어붙은 것.
눈꽃을 피운 것 같은 현상을 상고대라 부르는데 눈꽃은 흔해도 상고대는 드물다.
과연 오늘은 눈 호강하는 날이다.
몇 년 전, 우리는 아이슬립 산정에서 기가 막힌 설국을 체험했다.
그때의 감동이라니...
그런데 오늘은 상고대 꽃밭을 만났다.
또 한 번 생각이 슬슬 기어 나온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세상에 있어 물질적 현상에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바로 물질적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 현상을 떠나 있지는 않다.
이리하여 물질적 현상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런 머리에 쥐 나는 말이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정상을 뒤덮고 몽환처럼 나타난 상고대 꽃밭 때문이겠다.





과문한 탓에 깊이 모를 불법을 말하는 건 실례지만 이 말은 해야겠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그것을 얻으려 할 때 혹은 집착할 때 인간은 어리석음이 생긴다.
그 말은 우리 눈을 즐겁게 해 준 상고대가 곧 사라진다는 말이다.
하여 오늘 본 상고대가 영원하지 않는 것처럼 집착 말고 비우며 살자.
날이 추어 그런 건지 아니면 신기루 같은 서리꽃 밭을 만나 그런지 모르겠다.
오빠는 강남스타일~ 후렴구처럼 색즉시공이 자꾸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폐허가 된 산불 감시소에서 점심을 먹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 역시 올라 온 아이슬립 리지를 선택했다.
왜? 올라 올 때 만난 환상적인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다 ‘때’가 있다는 한국 속담은 명언이다.
올라 올 때의 그 환상적인 풍경은 하얀 안개 커튼 속에 꽁꽁 숨었다.
역시 색즉시공이 맞다.
그런들 무슨 대수랴.
이미 스마트폰 사진으로 체포해 놓았는데.
훠이훠이 순한 길을 가르며 하산길 휘파람을 분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자~”







하산을 마치자 다시 춘삼월.
정상의 추위는 이미 지난 일.
우리가 봤던 서리꽃도 곧 녹아 없어질 것.
그래서 오빠는 강남스타일~ 후렴처럼 또 색즉시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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