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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앨라바마 힐과 휘트니

2025.01.13 14:33

관리자2 조회 수:296

395번 풍경 고속도로 마운틴 휘트니와 앨라배마 힐

  • 기자명 신영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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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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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0.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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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의 세계산책_ 시에라네바다 산맥

 

395번 풍경 고속도로 마운틴 휘트니와 앨라배마 힐


글 ·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 이임수 작가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의 등뼈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높고 우람하다. 동고서저(東高西低)를 이루기에 동쪽(Eastern Sierra)에서 보면 더 장엄하다. 그 산맥을 따라 US-395번 하이웨이가 달린다.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갈 수 있는 이 도로는 시닉도로, 즉 풍경도로이기도 하다. 도로는 시에라 산맥뿐 아니라 사막과 호수와 아득한 옛날 분출했던 화산 지역도 지난다. 아는 만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S-395번 고속도로다.

 

 

 

395번 고속도로를 달리다

“시에라 산맥에 폭설이 내렸답니다. 맘모스 스키장 갑시다.” 정임수 작가의 전화를 받으며 하얀 시에라네바다 산맥풍경이 파노라마로 떠올랐다. 설악가의 노래처럼 ‘굽이져 저 흰 띠 두른’ 눈 덮인 시에라 산맥. 그래서일까. 우리의 존경하는 존 뮤어 선생은 겨울 시에라 산맥을 ‘빛나는 산맥’으로 이름 붙였다. 언제였던가? 어쩌다 밤중에 3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던 중이었다. 과장되게 커다란 보름달이 떠 오른 시에라 산맥. 불끈 치솟은 산맥 아랫도리는 어둠에 숨었으나 하늘에는 설악가처럼 흰 띠가 떠 있었다.

흡사 디즈니 영화사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중천의 그 흰 띠는 아름다웠고 고혹적이었다. 달빛에 눈 쌓인 능선이 몽환처럼 떠있던 풍경. 여태 보아왔던 시에라 산맥의 그림 중 어느 때보다 신비한 정경이었다. 설악가를 흥얼거리며 강렬하게 기억 속에 자리한 그 그림이  이번에도 볼 수 있을지 몰라.

“그럼 가는 길에 론 파인 앨라배마 힐즈(Alabama Hills)에서 하룻밤 야영을 합시다.”

정 작가가 깜짝 놀라는 눈치다. 눈 속 야영을 말하는 걸로 이해한 모양. 뜨악해 하는 그를 설득하려면 장황한 설명이 필요했다. 론 파인 앨라배마 힐즈는 여름엔 50도가 넘는 곳이라 야영은 꿈도 못 꿔요. 그늘도 없는 사막과 같은 곳이라 지금도 눈은 커녕 낮엔 반소매가 필요할 정도로 덥다. 그러므로 지금 야영이 딱 맞는 때. 그곳 붉은 바위 나라에서 보는 휘트니 봉은 너무 멋지다. 사진도 죽일 것이다. 그곳의 독특한 풍경은 수 백편 서부영화가 촬영되었을 정도니 그 진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어차피 차를 가지고 갈 것이니 야영 장비를 챙기자. 설국을 이루었을 맘모스 스키장에서는 호텔을 잡자. 숨 가쁘게 한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LA를 출발한 우리 차는 14번 고속도로가 자연스레 풍경고속도로 395번으로 합류했다. 왼쪽으로 슬그머니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나타나고 있다. 이 도로는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진다. 점점 높아지는 능선엔 과연 많은 눈이 덮여있다. 저 눈은 LA에게 생명수가 된다. LA는 주변도시를 포함하여 1,200만 명 정도가 산다. 도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물 없이는 못 사니까. LA는 연 강수량이 384mm. 서울 강수량 1,400mm에 비교하면 어린아이 오줌발에 다름 아니다. LA가 점점 커지니 대량의 물이 필요했다.

그때 찾아 낸 것이 바로 우리 논 앞에 보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 아니 물이다. LA 대수로(LA Aqueduct) 공사가 시작되었다. 도랑을 파고, 터널을 뚫고, 거대한 쇠 파이프를 설치하며 6년 만에 서울 부산 거리인 391km의 물길이 완성된다. 이제 시에라 산맥은 LA시를 위한 자연적 저수지가 되었고, 지금도 LA시 수돗물 30%를 이 수로가 담당한다. 이런 긴 설명을 하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정 작가를 슬쩍 보니 표정이 묘하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 표정. 좋다. 나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론 파인 들머리에 있는 비지터 센터에 차를 세웠다.

이 센터는 여러 정부기관이 근무하고 있다. 연방, 주 및 지방 정부 기관에서 합동으로 운영하는데 수로국 공무원도 있었다. 이곳에는 수로 건설 때 찍은 공사 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시에라네바다와 모하비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정보를 얻는다. 이 센터는 로또만큼 얻기 어려운 휘트니 봉 등산허가를 발급하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 직경의 우리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철 파이프 조각도 있다. 그 철관 속에 들어가 당시 수로 공사를 다시 설명했으나 공염불이었다. 정 작가는 시에라 산맥의 미니어처에 진지하게 빠져있었다. 축소 모형에는 요세미티를 포함하여 이곳 창문을 통해 보이는 휘트니 봉까지 표현 되어 있다. 정 작가 자신이 걸었던 존 뮤어 트레일도 보였다. 남들 입에 들어가는 생명수보다 정 작가는 그때 고생했던 기억에 빠져 있었다. 

 

 

 

설악동 닮은 도시 론파인(Lone Pine)

비지터 센터를 나온 우리는 론 파인(Lone pine)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도시라기보다 서부시대 모습이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마을이다. 눈 쌓인 시에라 산맥이 병풍처럼 론 파인 서쪽을 막고 있다. 톱날처럼 솟은 연봉 중에 이젠 눈에 익은 휘트니(4,832m) 바위봉도 보인다. 이 마을은 미 본토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봉의 들머리인데 설악산으로 친다면 설악동쯤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설악동이 설악산만을 위한 곳이라면 론 파인은 좀 더 다목적 탐험의 시작 동네다. 미국에서 가장 낮은 해저 86m의 데스밸리 사막 도로가 이 동네에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미 대륙 최고 높이와 최저 깊이가 함께 존재하는 곳.

정 작가 만자나(Manzanar) 수용소에 가봤어? 아니요. 론 파인은 역사적인 공부도 필요해. 이곳에 살던 쇼쇼니 인디언을 가둔 곳이 만자나 인가요? 아니지. 론 파인은 근대사의 안타까운 비극이 벌어진 장소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지. 그러자 미국 정부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을 모두 수용소에 가둡니다. 전쟁기간에 11만 명을 강제 이주시키고 억류한 수용소 10곳 중 한 곳이 이곳에 있어요.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오니까 몇 년 전부터 크게 기념관을 지어 자료를 전시하고 있지. 레이건 정부 때였을 거요. 1988년 미국은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집단수용소에 가두었던 모든 일본인에게 일인당 2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지. 한국에게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일본은 이 론 파인에 와서 반성해야 해.

또 하나 흥미로운 게 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브리슬콘 나무가 근처에 있다. 미국의 공공 연구소가 2012년에 수령이 5,062년으로 발표했으니 지금 5,070살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론 파인이 일 년 내내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바로 뒷산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모든 액티비티가 가능한 다목적 들머리로서 론 파인은 존재한다. 스키를 타거나 등산을 즐길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 세계 정상급의 아웃도어 탐험을 할 수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론 파인은 유명한 존 뮤어 트레일 남쪽 시작점인 동시에 종착지도 된다.

론 파인 시내에는 서부영화에서 본 듯한 목조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서있다. 송어가 뛰어오르는 형태의 낚시용품점 간판이 많은 걸 보면 이 지역에서 낚시가 성행하는 걸 알 수 있다. LA까지 흐르는 시에라 산맥이 흘려준 풍부한 물 덕분일 것이다. 실제로 론 파인을 흐르는 오언스 밸리의 강에선 ‘팔뚝’만한 송어가 많이 잡힌다. 그래서 이곳이 이스턴 시에라의 낚시가 시작되는 장소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야영지 앨라배마 힐즈로 가기 전 ‘론 파인 영화 역사박물관(Lone Pine Film History Museum)을 들르기로 했다. 불과 2천 명 정도만 살고 있는 서부의 변방 론 파인은 탐험의 도시인 동시에 영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한 세대를 풍미했던 서부극 영화에서 이 동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를 찍는데 아주 적합한 태양 빛과 풍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입장료 5불은 아깝지 않았다. 이곳에서 서부 영화 장르와 관련된 다양한 컬렉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가 야영할 앨라배마 힐 바위 세상은 박물관에서 본 자료처럼 많은 영화가 촬영되었던 현장이다. 무려 1920년 무성영화 시대부터 촬영지로 활용되었다지만, 최근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러셀 크로우를 스타로 만들어준 글래디에이터(Gladiator), 그리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아이언 맨(Ironman)에서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나오는 곳의 촬영지가 바로 이곳이다. 박물과 자료에는 이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가 무려 400여 편에 달한다고 알려준다. 그러므로 1990년부터 서부영화제가 매년 10월에 개최되고 있다. 앨라배마 힐은 지금도 영화와 험한 바위길을 달리는 자동차 광고 촬영이 자주 이용되고 있다.

 

 

 

앨라배마 힐즈(Alabama Hills)에서 무료 야영

우리는 비지터 센터 직원에게서 앨라배마 힐즈에서 야영은 허가가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꼭 1년전 인 2019년 2월, 이곳은 국립경관지역 명승지로 승격이 되었다. 국립공원이 아니기에 관리는 토지관리국이 한다. 캠핑과 하이킹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나 모닥불은 허가를 필요로 했다. 우리는 론 파인에서 휘트니 포털 로드(Whitney Portal Road)로 접어들었다. 정면에 휘트니 정상 암봉이 날카롭게 서있다. 이 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포털을 만나 포장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될 것이다.

예전엔 당일 입산은 허가가 필요 없었다. 휘트니 포털 등산로 입구에서 12시가 넘기를 기다려 정상을 오르내린 적이 있다. 이젠 당일도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 허가 받기가 로또만큼 어렵다. 드디어 무비 로드(Movie Road) 갈림길을 만나 우회전 하니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일반 승용차도 주행이 가능할 만큼 길은 상태가 좋다. 앨라배마 힐즈는 광활하게 흩어진 거대한 바윗돌과 아치들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3만 에이커, 즉 3,670만평 넓이를 가진 황갈색의 바위나라. 여의도가 대략 87만7천여 평이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사막 햇볕에 붉게 달구어져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눈앞 가득 바위세상이 펼쳐져 있다. 하얀 시에라 산맥을 배경으로 둥글고 완만한 갈색의 바윗돌 세상. 정 작가는 이곳이 처음이다. 어때? 론 파인에서 잠시 들어왔는데도 별천지지? 굉장하네요. 론 파인은 자주 지나쳤지만 이렇게 숨겨진 보석이 있었다니요. 이러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말을 달리며 총을 쏘고, 최근 영화인 스타워즈까지 이곳에서 촬영을 했지. 대단하네요. 정작가의 놀라는 눈이 보기 좋았다.

그래서 우리가 먼지 풀풀 날리며 가고 있는 비포장 길이 무비 플랫 로드(Movie Flat Road)가 되었다. 이제는 이곳에서는 영화를 위한 말만 달리는 게 아니라 사람도 달린다. 론 파인의 거칠고 거친 마라톤(Wild Wild Marathon) 대회가 그것이다. 론 파인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데 시에라네바다 산기슭인 이곳을 달리는 마라톤이다. 광대한 산자락 돌무더기 사이 캠핑카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들도 우리처럼 낯설고 외진 자연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하루를 접을 캠핑장소를 찾았다. 비지터 센터에서 들은 주의사항에는 남들 캠핑 장소를 활용하라는 조언이 있었다. 드디어 사방 경치가 좋은 캠핑 장소를 찾아냈다. 모닥불 피운 흔적을 보니 텐트를 친 자리가 맞았다.  

눈앞의 우뚝한 시에라 산맥 마루금은 하얗게 눈이 덮여 있지만 앨라배마 힐즈는 따듯했다. 산맥과 어울리지 않게 쌀쌀하기는 했으나 춥지 않다. 색다른 풍경속이고 시에라 산맥을 보기 위한 야영이므로 물이나 화장실과 같은 시설은 없다. 따라서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야 했으며 쓰레기도 깨끗이 수거해야 한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둠이 장막을 쳤다. 기대했던 보름달은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서 야영하자고 고집했던 ‘굽이 져 흰 띠 두른’ 시에라 산맥의 흰 띠가 어느 사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뫼비우스 아치 속의 휘트니 봉

우리가 어렸을 때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 놀았다. 종이를 오려 한쪽 끝을 고정하고 반대쪽 끝을 180도 회전시켜 첫 번째 끝과 연결하는 뫼비우스 띠. 종이를 길게 잘라 그 양 끝을 그냥 붙이면 동그란 모양이지만, 이를 한 번 꼬아서 붙였던 뫼비우스의 띠. 앨라배마 힐즈에 상징적으로 뫼비우스 아치(Mobius Arch)가 있다. 그 바위 구멍을 통하여 보는 휘트니 봉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곳을 온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완만한 뫼비우스 아치 루프 트레일을 따라 나섰다. 길은 앨라배마 힐즈 트레일과 겹쳐 있다. 기암 지대를 관통하며 이어진 트레일은 상황에 따라 론 파인 크릭을 따라 숲이 우거진 협곡까지 갈 수도 있다. 과연 이곳은 스타워즈에서 본 것처럼 황량한 바위세상이다. 바위마다 이름 짓는 걸 좋아하는 한국인이지만 백과사전 분량도 모자랄 상상력이 요구될 엄청난 숫자다. 앞에 보이는 아치가 누가 조각해 놓은 듯 꼭 하트 모양을 닮았다. 드디어 멀리 뫼비우스 아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가들 몇 명이 눈 쌓인 시에라 풍경을 담고 있다.

가까이 다가 선 뫼비우스 아치는 생각보다 크다. 날씨도 좋아 그 바위구멍 속 휘트니와 연봉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름대로 아치 한쪽이 꼬여 있는 듯 서있다. 정작가, 바위 구멍이 생각보다 크지? 아닌데요. 말씀 듣고 무지하게 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작네요. 이 말은 도전이자 반어법이다. 우리는 소소한 말싸움이 여행을 재미있게 만드는 걸 안다. 무한반복을 뜻하는 뫼비우스 아치 앞에서 하는 말싸움 역시 무한반복. 정 작가, 4,832m의 미국 본토 최고봉 휘트니 연봉이 바위 구멍 안으로 다 들어가는데 작다고? 내가 생각해도 멋진 말이다. 하지만 금방 튀어 나온 그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바늘구멍으로도 저 산은 다 들어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곳을 알려 줘 고맙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꼭 데리고 오고 싶은 곳이네요. 바늘구멍 비유는 그러했으나 그 말은 퍽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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