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카 춤을 아시나요?
2026.02.11 02:26
신영철의 세계산책_ 불과 물의 땅
뉴질랜드마오리족의 하카 춤
글 · 신영철 편집주간사진 · 뉴질랜드 관광청

마오리족 문신과 전쟁춤
뉴질랜드는 폴리네시아(Polynesia)로 불리는 구역에 속해 있다.
적도를 중심선으로 위쪽으로 하와이가 있고 남쪽엔 뉴질랜드가 있다.
그 사이 태평양에 존재하는 통가, 사모아 등 많은 섬나라도 포함한다.
‘마오이 석상’으로 유명한 동남쪽 최남단 칠레땅 이스터 섬에서 폴리네시아 경계는 끝난다.
태평양 절반을 차지한 만큼 광활한 넓이.
섬에는 여러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부족끼리 계속되는 전쟁과 갈등으로 새로운 섬을 찾아 떠나는 부족들이 생겨났다.
학자들은 뉴질랜드에 인간이 정착한 시기를 천년 전후로 본다.
사람이 살기 전, 외딴 섬 뉴질랜드는 홀로 독특한 생물적 진화로 발전했다.
늑대 같은 포식자는커녕 뱀도 없다.
새들은 힘들게 날아다닐 이유가 없어 날개는 퇴화했다.
그만큼 평화로운 땅이었다.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느 날 ‘쿠페’라는 마오리 추장이 새 땅을 찾아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우연히 거대한 섬을 발견한다.
뉴질랜드였다.
함께 있던 쿠페의 아내가 말했다.
“저건 아오테아로아예요.”
지금도 불리고 있는 ‘아오테아로아’는 ‘희고 긴 흰구름’이라는 말이었다.
한국보다 세배쯤 큰 뉴질랜드에 정착한 사람들은 쿠페의 마오리부족뿐만이 아니었다.
폴리네시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부족들이 계속 들어왔다.
추장만 500명을 훨씬 넘을 만큼 사람이 많아졌다.
애써 피해 온 다툼과 전쟁은 새로운 땅에서도 계속되었다.
‘긴 흰구름’의 땅이라는 낭만적 이름답지 않게 부족 간 전투는 치열했다.
뉴질랜드의 선주민이 된 마오리족들은 남녀 모두 덩치가 크다.
거대한 몸피답게 힘세기로도 소문나 있다.
전쟁이 잦은 만큼 거기에 따른 전쟁문화도 생겨났다. 하카(haka)라는 집단 춤이다.
하카는 지금도 민속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전쟁춤이다.
거구의 몸집에 얼굴에 문신을 빼곡히 한 전사가 무기를 움켜들고 눈을 부릅뜬 채 혀를 길게 내민다.
전투춤 하카에서 웃기지만 무서운 장면은 가끔 혀를 길게 내미는 동작이다.
그건 오늘 너의 살맛을 좀 보겠다는 위협이다.
‘너를 먹어버리겠다’는 말.
위협이 아니라 진짜였다.
마오리족은 전투에 이기면 상대편을 잡아먹는 식인 습관이 전통이었다.
맨 얼굴로도 눈을 부라리면 무서운데 마우리족 전사들은 지위가 높을수록 얼굴 전체에 문신을 한다.
영어로 타투(TaToo)라 불리는 말도 마오리족 같은 폴리네시아 언어다.
때리다(Ta) 기록하다(Tatau)에서 비롯된 말.
마오리족은 문신의 모양은 물론, 문신을 새기는 행위 자체를 신성하게 여겼다.
마오리족은 언어만 있지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문신은 사람의 가죽에 새겨 넣은 그들만의 족보이며 신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들을 문신으로 새겨 과거와 소통할 수 있었다.
문신은 족장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위대한 전사들만이 할 수 있었다.
그중 얼굴에 하는 걸 ‘모코 카우에’라 부른다.
뉴질랜드 박물관 순례에서 목격한 많은 마오리족 타투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무서운 느낌을 주려는 남성과 여성이 달랐다.
남성이 얼굴 전체에 하는 반면 여성은 턱에만 하였다.
자신들의 영역에 이방인이 나타나면 마오리족들이 숨어 있다가 창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무서운 문신을 하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눈을 부라리는 거구의 마오리족.
거기에 금방이라도 찌를 듯 창을 들어 위협하니 침입자는 공포가 대단했을 것이다.
마오리족 전통마을 공연에서, 공연임에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아오테아로아의 나라라는 낭만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전쟁문화였다.

마오리족의 식인문화
박물관 순례에서 사실을 재발견했다.
이들 식인 문화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적나라하게 알게 된 것.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찾은 사람은 유럽인이었다.
아벨 타스만(Abel Tasman) 선장.
뉴질랜드와 호주 사이 바다에 그의 이름 ‘타스만 해’가 붙어 있다.
항해 강국 네덜란드 타스만 선장이 이끄는 탐험대가 지금의 수도 오클랜드 근처에 상륙했다.
1643년의 일. 선원들이 상륙했을 때는 무인도라고 생각했다.
오랜 항해 끝에 풍요로운 새로운 땅의 발견으로 모두들 들떠 파티를 열었다.
밤늦도록 즐겼다. 이튿날 아침 타스만 선장이 잠에서 깨었을 때 45명 선원 중에서 12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선장은 선원들을 동원해 실종된 사람들을 찾게 하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마오리족이었다.
타스만은 선원들을 무장시켜 그곳으로 보냈다.
마을 근처 숲에 숨어 몰래 마오리족 마을을 살피니 섬뜩하게 얼굴에 문신한 족장이 보였다.
젊은 남자들과 여인들이 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축제나 파티가 있는 것 같았다.
건강한 마오리 남자들이 광장에 집결하여 혀를 날름거리는 마오리족의 하카 전투춤을 추었다.
그리고 난 후 포승으로 결박한 백인 선원들을 끌고 나왔다.
어제 실종된 선원 12명이었다.
마오리들은 선원 옷을 벗기고 목에 밧줄을 걸어 나뭇가지에 달아 살해했다.
그리고 굽고 삶고, 글로 옮기기 싫은 더 잔인한 목격담도 읽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은 진저리를 쳤으나 그게 마오리족의 전통이자 문화였다.
실종된 동료들이 마오리족 남녀노소 모두를 즐겁게 해줬다는 보고를 받은 타스만 선장.
그는 놀라 즉시 공포의 섬에서 떠나 버렸다.
마오리족은 몰랐겠지만 그 사건이 유럽인 사이에 알려져 한동안 백인들은 이 땅에 얼씬도 안했다.
게걸스러운 유럽인 땅 욕심에서 벗어난 마오리족은 자기들만의 세월을 보냈다.
물론 전쟁은 계속되었고 그렇게 이 땅에서 식인은 지난 1830년대까지 행해져 왔다.
그들은 살해된 적을 먹으면 죽은 사람의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 믿었다.
즉 그들만의 마나(Mana)라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마오리족 식인 습관은 또 다른 문화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역시 존재한다.
적을 먹어 치운다.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다시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땅과 재물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어서 천혜의 자연을 가진 뉴질랜드를 유럽인들이 포기할리 없었다.

마오리 전쟁
유럽인들 유입이 시작되었던 때 뉴질랜드에서 가장 끔찍했던 ‘보이드 학살’이 일어났다.
1809년 항구에 정박했던 보이드호(號) 백인과 마오리족 간에 싸움이 붙었다.
수적으로 우세하고 전쟁에 능한 마오리족이 이겼다.
붙잡힌 선원과 승객들 66명이 마오리족에 먹혔다.
유럽 이주민들이 떼거지로 마오리족 식량이 되었던 보이드호 사건.
이 엄청난 일로 다시 한 동안 뉴질랜드 진출이 멈춰졌다.
하지만 결국 유럽인들이 뉴질랜드에 진출하여 공생을 모색한다.
결국 뉴질랜드는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1840년 ‘마오리 전쟁’이 시작되었다.
유럽인과의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세계사가 증명하듯 과학이 우수한 백인이 이기는 게 침략역사다.
호주 원주민이었던 인도계 애보리진이 영국 이주자들에게 대량 학살당한 사건.
미국대륙에서 인디언들이 제거되었던 역사가 그렇다.
하지만 먹고 먹는 전쟁으로 단련된 마오리족 전투력은 만만치 않았다.
백인과 12년간 전쟁에서 먹히지는 않았으나 먹을 때도 있었다.
하카를 추며 자신들을 별식으로 먹어버리는 식인에 영국은 애가 닳았다.
미국독립전쟁보다 더 많은 군인 15,000명을 파견할 정도로 힘든 싸움이었다.
승리는 했으나 결국 회유책이 나오고 휴전을 한다.
결과로 ‘와이탕이 조약’으로 마오리족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한다.
이제 뉴질랜드 의회에 자체적으로 마오리 의원도 선출할 수 있다.
뉴질랜드는 마오리어를 법적 공용어로 인정하며 국가도 마오리어로 먼저 부른 후 영어로 부른다.
마오리족의 식인 문화.
하지만 상대편을 내 뱃속에 넣느냐, 내가 먹히느냐 하는 잦은 전쟁은 마오리족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마오리족은 일종의 타협점을 찾아낸다.
전쟁 전 하카라는 집단 춤을 추며 화해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한 판 붙기 전, 자신들이 더 강하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일종의 세리머니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전통공연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들의 영역에 함부로 들어온 이방인(관광객) 앞에서 하카를 재현했다.
한바탕 하카를 신나게 춘 족장이 나뭇가지를 던졌다.
나뭇가지를 줍느냐, 밟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나뭇가지를 밟으면 바로 전투로 이어지지만, 가지를 주워들면 ‘싸울 생각이 없다. 잘 지내자’라는 의미라 했다.
내 팀의 관광객 대표가 나뭇가지를 주웠다.
그러니까 추장 뒤에서 전투태세였던 마오리족이 “키아오라(Kiaora)!”라고 환영 인사를 한다.
그리고 마오리족 특유의 코와 코를 비비는 인사법인 ‘홍이’(hongi)를 나누고 회관으로 입장했다.
본격적으로 하카춤이 공연되기 시작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마오리족이 총을 쏘는 중공군 앞에서 하카를 췄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이제 하카는 뉴질랜드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국민춤으로 발전했다.
정부도 이민자들을 한데 묶기 위해 하카를 장려했다.
마오리족이 전투에서 승리하자는 춤에서 다목적 용도로 퍼져나갔다.
경기뿐 아니라 이웃을 환영하거나 결혼식과 장례식에도 집단 춤이 필수가 되었다.
사회·국가의 다양한 공식 행사에도 도입돼 공식 의전절차가 되었다.
학교에서 교육하는 국민 춤으로 거듭난 것이다.
널 잡아먹겠다는 몸서리나는 춤에서, 이제 코가 매울 정도로 감동적 집단 춤이 되었다.
유튜브 검색을 해보라.
결혼식과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하카는 물론 다양한 방면에서 뉴질랜드 국민춤을 만날 수 있다.
문신과 하카는 마오리족 대표문화다.
2019년 일본에서 럭비월드컵이 열린다.
당연히 최다 우승 팀인 뉴질랜드 대표팀 올 블랙스(All Blacks)도 참가하였다.
일본의 유명한 목욕탕에서 대표팀과 시비가 붙었다.
목욕탕엔 ‘문신이 있는 사람은 입장을 할 수 없다’고 써 붙인 게 문제였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문신은 야쿠자 같은 조직폭력배를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오리족 타투는 전통이자 족보이며 역사였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며 해결되었던 해프닝이었다.
럭비와 하카
마오리족 문화관광으로 먹고사는 ‘로토루아’를 방문했다.
이 지역이 마우리부족 집성촌이다.
같은 이름의 호수에서 그 유명헌 노래 ‘연가’가 태어났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애잔한 가사가 일품인 포카레카레 아나(Pokarekare ana)는 여기 살던 마오리족의 민요였다.
많은 여행자들이 로토루아의 마우리족 테푸이아 마을 민속촌에 가서 하카를 본다.
마우리 민속촌은 자신들의 문화와 관습과 하카 공연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붙어 있는 지열지대의 간헐천과 토속음식을 제공한다.
화산과 온천이 많은 나라답게 땅속 구덩이에서 찜을 하는 마오리 전통 요리인 ‘항이’를 먹을 수 있다.
문화체험이 끝나자 그들의 공회당인 극장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카 마테’라는 또 다른 하카였다.
창작 카마테는 럭비시합 전 추는 춤이라 했다.
뉴질랜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에 영국식 ‘럭비’가 으뜸이다.
마오리족 중에는 스피드와 민첩성이 뛰어난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대표선수도 많다. 럭비를 대표하는 선수는 아이돌 스타보다 더 인기가 높다.
뉴질랜드 럭비대표팀 올 블랙스(All Blacks)는 지금 인기가 방탄소년단 못지않다.
그 중 마오리족 조나 로무(Jonah Lomu)라는 전설적인 선수가 있었다.
196cm의 키에 120kg이 넘는 거구로 100m 달리기를 10초 8에 뛰었다.
태클 들어 온 선수를 그냥 몸에 매단 채 질주했다.
그를 넘어뜨리는 선수는 ‘현상금’을 받을 정도였다.
럭비가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시합 시작 전 하카 공연되기 시작했다.
영연방에 중계되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 개막식에서다.
하카는 럭비 경기 전에 춰야 하는 전통이 됐다. 하카는 에너지가 넘친다.
너를 먹어버리겠다는 혓바닥 놀림도 여전하다. 시합도 일종의 전쟁이니까.
구호에 맞춰 힘차게 발 구르기, 혀 내밀기, 리듬에 맞춰 자신의 몸을 치는 동작.
그 역동적 춤은 관중들까지 흥분시키는 것이다.
위협적인 춤을 통해 팀의 결속과 상대팀 겁을 유도하는 예술.
하카 덕분에 뉴질랜드는 럭비에 관한한 세계 최강으로 군림 중이다.

하카로 하나 되기
하카는 부족, 성별, 시기, 상황에 따라 춤 형태가 다양하다.
따라서 뉴질랜드 독특한 문화이자 집단춤은 지금도 진화중이다.
근대에 들어 하카는 승리와 성취를 위해 강한 정신력을 공유하는 동시에 이민자의 나라의 구심점이 되었다.
민족 간 갈등을 없애는 데 하카는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백인과 마오리족 그리고 혼혈들과 최근 아시안까지 담을 허물며 추는 하카.
마스게임처럼 집단공연에서 뉴질랜드는 하나가 된다.
또한 관전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서며 뉴질랜드의 독특한 문화코드 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계 챔피언 뉴질랜드 럭비 대표 팀인 올블랙스가 하카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올블랙스 하카 ‘카마테’의 가사는 유명한 마오리 부족장이 지었다.
뉴질랜드 팀이 처음으로 하카를 선보인 것은 1888~1889년의 영국 원정 경기 때.
이때 하카를 ‘카 마테’ 버전으로 불렀다.
“카 마테! 카 마테! 카 오라! 카 오라!(나는 죽는다! 죽는다! 나는 산다! 산다!…)”
건장한 선수들이 큰 소리로 노래하며 자신들 몸을 두드리는 전투 춤.
하카는 시합 못지않은 볼거리다.
그 표정과 춤은 관전자들에게도 감정이입이 된다.
이렇게 하카는 마오리 문화를 소개하는 공연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뉴질랜드의 핵심 문화가 된 하카는 현대문화에서 중요시되는 예술적 속성도 만났다.
유치부에서부터 노년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각 단계별로 ‘카파 하카’ 경연대회가 열린다.
불꽃 튀는 경쟁 때문에 참가자들은 오랜 시간 공들여 연습을 한다.
그리하여 2년에 한 번씩 전국 최고의 하카 그룹이 모여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많은 국민이 참가한다는 뜻에서 마우리어로 테마타티니(많은 얼굴)라 부르는 축제다.
우리나라에도 하카는 소개가 되었다.
요즈음 홍대 앞 공연도 있다.
예전엔 기업광고에도 사용했다.
남자들이 하카를 추며 ‘기가 팍팍, 기가 산다’라는 카피를 사용한 TV광고.
바로 KT의 기가 인터넷 홍보 광고였다.
광고대로 하카는 춤추는 사람도 관전하는 사람도 기가 살 만큼 격렬하다.
곰곰 생각하면 기괴하고 무섭고 슬펐던 하카의 눈부신 진화였다.
신영철 편집주간 a1825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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